며칠 전 장롱 깊숙이 넣어둔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편지며 다이어리가 가득 들었다. 대학생 때는 양지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계획과 일기를 함께 적었다. 다 채우진 못했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당시의 상황과 기분이 적혀 있어 소중하다.
올해의 다이어리는 새 것 같다. 예스24에서 책을 사고 받은 건데, 윤동주 시가 적혀 있다. 어느 순간부터 다이어리에는 '회사 일'들이 적혔다. 어차피 회사 일이 적힐 것이니 돈 주고 사지 않았다. 선물하거나 버렸다. 그럼에도 윤동주 시가 적힌 이 다이어리를 쓴 까닭은 나름의 욕심인가.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는 건가.
올해는 일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다이어리도 비었다. 회사 일 말고 상황과 기분이 빼곡했던 다이어리가 갖고 싶다. 아니 만들어가고 싶다. 새 다이어리를 샀고, 보다 소중히 채워가야지.
주말 글수업에서 한 아이에게 올해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물어본 적 있다. 아이는 역으로 내게 무엇을 하고 싶냐 물었다. 나는 하루에 하나씩 버리고 있다고, 올해 60개를 채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찌어찌 60개를 넘겼다. 늘 실패만 하는 내가 뭐라도 하나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