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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08. 2021

자연스러운 풍경

물든다는 건

우리집은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 그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환한 모후 정원 앞이다. 

모후 정원(Jardim do Morro)은 언덕의 정원이다. 봉긋 솟은 언덕에 잔디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햇빛은 커다란 손 모양을 띤다. 햇빛이 손가락을 뻗어 잔디를 쓸어 만진다. 머무는 곳마다 반짝거린다. 물결처럼 굽이진 의자가 놓여 있고, 산책로를 오르면 투박하게 쌓아 올린 바위도 나온다. 나는 잔디에 누워 있는 걸 좋아한다. 기대듯 몸을 누일 수 있어 좋고, 등이 따뜻해서 좋고, 주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정면에는 도우루 강 건너 히베이라 지구가 자리한다. 히베이라는 포르투의 역사 지구이자 시내가 발달한 곳이라 여행자 대부분이 일정을 보낸다. 강변에는 레스토랑 테라스가 줄지어 있다. 그 위로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주홍색 지붕들, 사이로 삐죽 솟은 몇 개의 첨탑도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히베이라 지구와 이곳 가이아 지구를 잇는 동 루이스 다리가 있다. 에펠탑을 설계한 에펠의 제자 테오필레 세리그가 설계한 아치형 철교다. 하층부는 자동차와 사람이 지날 수 있고 상층부는 사람과 철도가 지난다. 상층부는 모후 정원과 바로 이어진다. 더 고개를 돌려 모후 정원 오른편을 보면 세라르필라두 수도원이다. 눈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 곧 해가 지려나 보다. 


모후 정원, 동 루이스 다리, 세라르필라두 수도원은 저녁에도 환하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두 눈 가득 저녁놀을 담을 수 있다. 나는 포르투에서의 시간 중 반 이상을 모후 정원에서 보냈다. 모후 정원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러움’이라는 걸 느낀다. 자연스레 오후에 내리쬐던 햇빛이 기울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온도가 바뀌면서 주변의 공기도 달라진다. 웃음소리, 병 부딪치는 소리, 발소리, 음악이 덧입혀진다. 둘러보면 한 번쯤 본 듯한 사람들이다. 빵집에서 에그타르트에 슈가 파우더와 시나몬 파우더를 잔뜩 뿌려 먹던 사람. 버스커 앞에 멈춰서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동전을 넣고 간 사람. 북적거리는 식당 앞을 기웃거리고 또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왔던 사람. 모두 강변을 바라본다. 한 손에는 와인을 병째 들고 있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음이 들리면, 연이어 다른 사람들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사람들의 뒤통수와 옆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누군가의 사진 속에도 보랏빛으로 물든 내가 담겨 있을 거다. 


낯설다는 감정은 멀리 떠나올수록 사소해진다

서로가 낯선 사람들이 낯선 장소에 모여 주변을 받아들인다. 노을 지는 하늘, 시원한 바람, 달고 시큼한 냄새, 뜻을 알 수 없는 말소리. 어느새 익숙해진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이 낯섦을 낯설어하는 거라니. 해가 저물면 제법 쌀쌀해진다. 그러면 나는 집으로 가 담요와 새 와인을 챙겨서 다시 나온다. 주홍색 불을 켠 가게와 사람들, 그 풍경을 본다. 슬그머니 휴지를 들고 일어서는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기요, 괜찮으면 우리 집 화장실 써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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