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Afternoon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 중이었다. 가이아 강변을 걷다가 와이너리 옆 골목에 들어섰는데, 예상과 달리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한쪽에는 높은 돌담, 다른 한쪽에는 문 닫힌 집들이 있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생각해보니 오르막길에 들어선 이후로는 내내 그늘이었다. 걸음은 앞을 향했지만 자꾸 뒤를 돌아봤다.
내가 멈춰 선 곳은 볕이 드는 자리, 네 갈림길이 만나는 지점이자 주택가 한가운데였다. 작은 가게도 서너 군데 있었다. 그러나 강변처럼 알록달록하지도 않고 입구에 메뉴판도 없었다. 여행객이 찾아오는 일은 드문 모양이다. 가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를 빤히 보다가 서로 대화를 나눴다. 나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한국에서 낯선 나라로 열두 시간 넘게 날아온 것도, 낯선 골목으로 들어선 것도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진짜 낯설어서’ 당황하고 말았다. 방향을 틀어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무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Good Afternoon!”
‘Good Afternoon.’
주문에 걸린 게 틀림없다. 인사말을 듣고 돌아서자, 그 사람 뒤로 붉은색 차양을 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 손님이었다. 가게 앞에는 의자 여러 개가 경사를 따라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가게 안의 의자 개수가 그쯤 될까. 가게 한 면이 통유리로 돼 있는데도 내부가 어두웠다. 열린 문으로 좁은 바 테이블과 술병, 손님 두어 명이 보였다. 포르투 카페나 식당 어디든 진열된 에그타르트는 안 보였다. 무엇을 파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외지인에게는 불친절한 가게였다. 그리고 궁금한 가게였다. 눈을 피하는 외지인에게 선뜻 인사하는 사람들이 찾는, 쓸데없이 많은 의자를 내놓는 가게라니. 골목을 나와 익숙한 길에 접어들어서도 내내 질문이 따랐다.
다음날 오후에 다시 가게를 찾았다. 가게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좁았지만, 전만큼 춥고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게 보였다. 왼쪽의 높은 돌담은 튼튼해 보였고, 오른쪽의 문 닫힌 창문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창문으로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2층 난간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다. 웃음이 났다. 하루 만에 이 집주인이 고양이와 도트무늬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붉은색 차양 위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차양 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향해 여전히 어색하게, 그러나 먼저 눈인사를 건넸다.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Good Afternoon’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