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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08. 2021

포르투의 우리집

1,063,482원짜리 집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면 숙소부터 알아본다. 

세계문화유산, 줄 서서 맛보는 식당, 드물게는 후기가 수백 건인데도 숨은 관광지로 회자되는 장소보다 구미가 당기기 때문이다. 특히 에어비앤비 숙소들은 호스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암막 커튼과 레이스 커튼, 긴 조명과 짧은 조명, 기하학 패턴의 침구와 단색 침구. 둘 혹은 여러 개 중 하나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데에는 취향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취향과 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어서, 집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호스트에게 친근감이 든다. 침대 맡 책장을 보며 ‘이 사람은 자기 전에 책 읽는 걸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선택하고 배치하는 삶과 거리가 멀었다. 

밤이면 언니와 나란히 누웠고, 낮이면 다른 가족들이 놀러 와 방문을 열었다. 물건의 위치가 자주 바뀌었다. 일기장이 엉뚱한 데 꽂혀 있는 걸 본 이후로는 솔직해지는 일에 인색했다. 포르투에서의 삼십 일을 한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 선택하고 배치해보기, 다시 말해 내 공간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국어사전에 ‘살다’를 찾으면 이런 뜻이 나온다. 


‘본래 가지고 있던 색깔이나 특징 따위가 그대로 있거나 뚜렷이 나타나다.’ 
‘성질이나 기운 따위가 뚜렷이 나타난다.’ 


산다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먼저 집을 선택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에 ‘포르투’를 입력하자 지도가 나왔다. 도우루 강을 기준으로 두 지구로 나뉘었다. 어쩐지 포르투의 에어비앤비는 위쪽 히베이라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지도에 표시된 명소도 대부분 그곳에 있었다. 낯선 나라의 시내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사람이 많아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 반대다. 낮에도 북적거릴지, 그래서 시끄러울지, 밤의 분위기는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아래쪽 빌라 노바 드 가이아는 한적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공간 분리가 잘 돼 있는 집. 머리맡에 일기장을 두고 자도 걱정 없는 내 방이 필요했다. 방 외에도 각각의 공간이 분리돼 제 역할을 하기 바랐는데, 특정 공간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또 어떤 행동을 많이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두 번째는 널따란 테라스가 있는 집.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다. 운 좋게 조건에 맞는 집을 발견했다. 거실, 주방, 욕실, 테라스, 심지어 방은 두 개를 갖춘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다세대 주택 1층 집. 1,063,482원, 가격은 넘쳤다.     


넘친 게 또 있다. 혼자에서 둘이 됐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돌연 떠나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었다면 과연 똑같이 했을까 싶지만, 나는 친구에게 방 한 칸 내주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세입자였고 비공식적으로는 타국에서의 동아줄이었다. 내 방문 밖에는 익숙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이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취향 살기, 그러니까 매 순간 선택하기. 하나는 확실했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볼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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