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저런, 마법에는 돈이 든답니다

그러니 마법이 없어도 괜찮은 세상을

by 졔졔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할 때 머리카락을 만지는 습관이 있다. 손가락을 빗 삼아 머리를 연신 빗어 내리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쓰다듬기도 한다. 가르마의 시작점에서 머리카락 끝 쪽으로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솎아내고 싶어지는 머리카락들이 있다. 누군가는 지랄 머리라고도 하고, 돼지 털 같은 머리카락이라고도 하는데, 돼지 털이라기엔 솔직히 더 꼬불거리고 지랄 머리라기엔 딱히 지랄하고 있는 모양새는 아닌 머리카락들. 모두 알면서 말은 안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음모(陰毛)에 제일 가까운 느낌 아닌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 떨어져 놓고도 이 악물고 뿌리내리고 자라나는 민들레 홀씨처럼, 내 두피의 모공 일부는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근데 뻔뻔하게 이 악물고 뿌리내리고 자라고 있다. 그렇게 내 머리에선 두세 번을 생각해도 자리를 잘못 잡은 게 확실한, 겨드랑이 털이 자란다.


검색을 통해 확인한 조선헬스와 몇 블로그의 결과를 보니, 선천적으로 자라는 심한 곱슬머리는 애초에 모공의 모양이 예쁜 물방울 모양이 아닌 휘어진 형태의 모공이 원인이라고 한다. 영양이나 수분율이 아니라 제면기 자체가 텄다는 소리다. 남들이 스파게티를 뽑아낼 때 나는 푸실리 룽기를 뽑아내는 기계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비분리형으로.


조선헬스.jpeg 두피 장착 기본 OS가 다르다, 조선헬스


어렸을 때는 내가 머리카락이 어떠한지는 당연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적용되는 미의 기준도 모르고, 남들과 머리카락을 비교할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머리에서 겨털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인지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겨털도 거웃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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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다 저렇게 뻗치는 건줄 알았지 뭐야.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머리카락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머리카락에 대한 미의 기준이 나에게도 학습되기 시작했다. '로레알을 써야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너울대는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에 매료되어 뜻도 모르고 광고 멘트를 외웠다. 세일러문과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에 나오는 세일러 자매들의 다양한 스타일과 나풀거리는 포니테일을 보며 저런 머리가 예쁜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차 내 머리카락은 왜 저렇게 되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때도 개별적인 머리카락 한 터럭 한 터럭에 대해서 신경 쓰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부스스한 머리가, TV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모양'과는 거리가 있다는 정도로 신경 쓸 뿐이었다.


붕 뜨는 머리가 싫다면, 묶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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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야 묶으면 되니까!


어떤 날은, TV에서 해주는 특선 영화 <시스터 액트>를 보면서 우피 골드버그의 머리가 나랑 비슷하다는 것에 기뻤다. 시스터 액트에서 우피 골드버그가 맡은 주인공 돌로리스는 정말 '짱'이었다.

'노래도 잘하고, 용감하고, 다정하고, 다른 사람을 세울 줄 알고, 모두를 이끌어 변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보다 더 풍성하고 곱슬곱슬한 머리를 하고 있어!'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을 앞 뒤로 살피며 만약에 찰랑거리는 탄탄대로 같은 머리카락을 가질 수 없다면, 저렇게 더 풍성하고 곱실거리며 존재감을 잔뜩 드러내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그런 여유가 있었는데.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던 98년 겨울은 상당히 괴로웠다. 동생이 어린이집에서 옮아온 이 때문이었다.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감고 말리고, 참빗으로 내 꼬불거리는 머리를 빗어야 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와 동생을 하나 씩 맡아 씻기고 감기고 서캐를 훑어냈다. 엄마가 도끼빗과 롤빗으로 머리를 빗어줄 때도 아파서 짜증을 내던 나였는데, 이번엔 더 끔찍한 고난도의 참빗에 머리를 내어 맡겨야 했다. 이가 얼마나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잘 몰라 당장 여러 번 머리를 감고, 빗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에 짜증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던 초반과 달리, 머리를 감고 머리를 닦은 수건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던 이를 본 이후로는 그 끔찍한 광경에 이 악물고 빨리 이것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빗도, 약도 견뎠다. 견딤에는 이를 없애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낫다는 엄마의 말도 크게 한 몫했다. 내 머리에 이가 산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니!'


그러나 그렇게 견뎠던 것이 무색하게, 결국 나는 머리카락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안된다고 싫다고 버텼지만, 엄마 아빠는 이와의 빠른 종전을 위해 나와 동생의 머리를 싹독 자르는 길을 선택했다. 짧아진 머리만큼 이와 서캐도 함께 떨어져 나갔고, 짧아진 머리는 참빗으로 빗기에도 수월한 모양이 되어 우리 자매의 이는 박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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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나란히 단발일 수 밖에 없었던...


이 박멸의 기쁨, 머리야 다시 길면 된다는 생각으로 단발로 맞은 99년 새해와 새 학기.


아이들의 놀림이 시작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놀렸던 아이들은 나와 친하던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짧아진 머리카락이 붕붕 떠오르는 것을 놀렸다. 몽실언니 같다고 했다. 그중 한 아이는 엄마가 미용실을 하던 아이인데 자기처럼 매직을 하라고, 머리가 이게 뭐냐고 했다.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중간중간에 조금 더 밝은 갈색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던 그 아이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 내게 그 말을 하던 그 아이의 하늘색 트레이닝 복, 그리고 핀잔을 주듯 경멸하는 듯한 말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생각난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달라고 졸랐다. 이미 이 때문에 머리를 자를 때, 곱슬이 심해 머리가 많이 뜰 텐데 새로 나온 매직이라는 시술이 있으니 해보는 게 어떻냐는 미용실 원장님의 영업이 한 차례 있었다. 차라리 모르면 좋으련만 나는 어디에 가면 나에게 경멸을 표현하던 그 아이 같이 윤기 나고 찰랑거리는 머리가 될 수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도로시와는 달리, 마법이 있다는 확신도, 마법사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마법의 대가도 알고 있었다. 다만, 돈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 3만 원 돈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그랬다.


봄, 여름, 가을이 순차적으로 지나고 다시 겨울을 맞을 때까지 머리는 여전히 곱슬이었다. 4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는 어감이 더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를 찾은 것에 신이 난듯한 표정으로 아다다 같다고 했다. (아다다는 참고로 단발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몽실언니도 아다다도 가부장적이고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 여성 장애인이라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살아보려 부단히 애쓴 짠하고 대단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들의 이름을 빌어 나를 놀리는 아이들은 그냥 곱슬머리로 푸석해 보이고 붕 뜬 나의 단발에서 몽실언니의 가난과 취약함만을, 바보로 취급되던 모습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투영해 놀리고, 놀리고, 놀렸다. 아이들은 별생각 없어 보이지만 사실 본능적 직감 같은 게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이 내 머리가 곱슬이라는 것 외에 마법을 실현시키기 위한 돈이 없는 것을 알아챈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리고 그 직감을 숨기려 들지도 않고 '장난'이라는 미명 하에 해맑게 드러내어 사람을 더 깊이 상처 주곤 하니까.


화가 나고 분했고, 슬펐고, 무엇보다 그 놀리는 말들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곱슬인 머리가 싫었다. 곱슬머리는 짧을수록 더 붕 뜨는데 내가 봐도 그 모습은 TV에서 나올 법한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견뎠고, 학교에서 많이 견뎌야 했던 날은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매직을 해달라고 한 번 씩 더 졸라 보았다. 결국 시간이 도와, 머리는 다시 자라 묶을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그 이후로 첫 매직을 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머리를 풀고 학교에 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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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단체사진 속 빨간 후드 집업을 입은 나는 올 백이고, 6학년 졸업 때도 어김없이 모두 올 백이었다.


그때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밉다. 나보다 잘 못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런데 정말 그 아이들이 못되기만 해서 있었던 일들일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아이들은 곱슬로 부스스한 머리를 왜 놀림감으로 여겼을까? 매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나를 왜 놀려도 되는 대상으로 여겼을까? 그 아이들에게서 그 당시 '어른들'의 시선을 유추한다. 그 당시 어른들이 보여주던 아름다움과 머리카락의 정상성에 대한 편협함, 가난을 함부로 경멸해도 되는 것으로 여기던 시선들을.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내가 그 시선이 되었다. 내가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TV, 유튜브 등의 미디어에는 정형화된 잘 꾸며진 머리카락만이 보인다. 하지만 세상엔 나 같은 머리도 있다. 어딘가 나 같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겨드랑이 털이 잘못 자리를 찾은 것 같은 곱슬머리를 가진. 여전히 겨드랑이 털을 머리카락 인척 하는 마법을 부리는 데에는 돈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고 괜찮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시선들이 필요하다. 또, 주변에서 가난의 냄새를 맡았을 때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 그대로를 '현재의 상황' 중 하나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선들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한테 '감히 가난하면서 마법을 꿈꾸는 것이냐고,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머리카락까지 신경 쓰는 것이 말이 되냐고, 이런 것까지 원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지 않는 시선이 필요하다.


지금 자라고 있는 '졔졔'들이 가능한 한 머리카락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다만, 머리카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각자의 머리카락을 흥미롭게 여기고, 서로의 다른 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길 바란다. 머리카락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와 괴롭힘은 1998년에나 가능했던 일이어야 한다.


2021년, 아이들의 정수리 위는 아레나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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