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ents and the Angry Inches
2002년, 중학교 입학 후 첫 매직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염원했던!
(혹시 더 궁금하다면, 염원이 담긴 이전 글을 참고하세요.)
소원 성취와 함께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6년이나.
이름하야 두발 규제!
머리카락에 대한 글을 연대기 순으로 적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장 빈곤한 시절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머리카락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인권 존중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이 확산되어 있고,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도 두발의 자유는 곧 인권이라는 선언들이 명문화되어 있다. (부럽다.) 하지만 '라떼는' 머리카락이 '학생다울 것'에 대한 메시지가 만연해있던 시기였다.
귀밑 5센티. 동시대 중학교를 다니던 주변 학교의 평균적인 머리카락 길이였다. 초등학교 때 염색을 하던 아이들도, 머리를 길게 길러 펌을 한 아이들도 중학교의 살벌한 두발 규제 앞에선 별 수 없이 모두가 머리를 자르고 검은색 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나도 동네 한 여자 중학교에 진학해 두발 규제선에 갇히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 귀 밑 15센티까지 허용되는 학교였기에 사정이 나았다면 조금 나았다. 10센티가 넘는 머리카락을 가진 학생들은 머리를 묶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따라붙어있긴 했지만.
나도 입학 전 학교에서 전달한 학생 생활 규정에 맞춰, 귀밑 10 센티로 겨우 꽁지머리를 묶어내는 길이로 바투 잘라낸 머리에, 인생 첫 매직이라는 기름칠을 하는 것으로 중학교 입학을 준비했다. 월경을 일찍 시작해서 드라마틱한 성장이 기대되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하는 기대에 큰 치수로 산 어벙한 교복을 걸치고 시작한 중학교 생활.
우리는 매일 아침 교문에서 스캔을 당했다. 학주(학생주임의 준말인데, 지금도 이 존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마을버스를 타고 도착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등굣길 맵의 마지막 보스몹이었다. NPC처럼 아침마다 교문에 서있는데, 20%의 확률로 시비를 걸어오는 것을 게임 기획자들이 설계한 것 같은 학주는 어두운 눈과 엑소더스처럼 줄지어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스캔할 수 없으므로 선도부라고 하는 호위 몹들과 함께 사찰 정문의 사천왕상처럼 서 있어 꽤나 높은 확률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0%는 적어 보이지만 매일 그 앞을 지나가야 할 때는 5일에 한 번은 털린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학생답지 않은' 학생들과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 시작은 주로 그들의 스캔으로부터 이루어지는데, 교복을 변형하지는 않았는지 (타이트하게 줄이는 것도, 치맛단을 늘리는 것도, 교복 재킷을 크롭 형태로 자르는 것도 다 안될 일이었음), 발목까지 오는 흰 양말을 신었는지 (덧신 형태의 양말이나 캐릭터 그려진 양말, 색이 있는 양말 안 되었음. 양말 안 신는 것도 안 되었음), 하복 안에 브라가 비치지 않도록 추가적인 속옷을 착용했는지 (더워서 브라도 속옷도 다 벗고 싶다, 이 놈들아), 지정된 색 외의 아우터를 입었는지, 동절기에 하복을 혹은 하절기에 동복을 착용했는지 등이 있었지만 가장 신경 써서 보는 것은 단연 학생들의 머리카락이 길거나 색이 변해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너무 짧지는 않은지 였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들은 학생답지 못한 구석에 대해서 훈계를 시전함과 동시에 벌점 사전 같은 것을 꺼내 그들의 심기를 거스른 항목에 상응하는 벌점이라는 데미지를 날렸다. 동시에, 내일까지 무언가를 시정 해오라는 명령도 함께 날렸다. 외상과 내상이 함께 발생하는 전투. 게다가 일정 수준 이상 벌점이라는 데미지가 날아오면 교내 봉사나 사회봉사라는 추가 퀘스트를 달성해야만 그들과의 전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늘, 이 전투에서 가장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싸우거나 애초에 가장 열심히 보스몹 군단을 피해야 하는 격전의 고지가 되었다. 중학생이 갓된 14살 1학년에게, 매일 아침 등굣길에 이마의 땀을 훔치며 낙엽을 쓸거나, 눈을 쓸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운동장을 도는 '학생답지 못한' 언니들을 보는 것은 일종의 공포 정치로 작용했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서 학교 청소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어느 날, 중1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긴 친구(는 엄밀히 아니지만 같은 반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 머리카락 길이를 재더니 우리 눈앞에서 그 친구의 오른쪽 옆머리 반쪽을 정말 귓불 높이로 싹 잘랐다. 본의 아니게 앞쪽에 앉던 시기였기에 그 아이 머리카락이 잘릴 때의 서걱 소리는 크게 들려왔고, 말 그대로 서슬 퍼런 그 소리는 나한테 공포로 작용했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너희를 이렇게까지 대하겠다는 소리. 그 아이는 양쪽이 어긋난 길이의 머리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처음엔 그런 싸움이 무서워 '학생다운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 깡도 생기고(?) 멋도 부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앞이마에 깻잎을 경작하기 시작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모두가 깻잎 농사를 지었다. (못 믿겠다면 구글에 깻잎머리를 검색해보자.) 깻잎은 뒷머리 길이를 재서 벌점을 먹이던 시기의 우리에게 돌파구였다. 아, 귀 옆에 늘어뜨린 더듬이도.
이후 좀 더 나이를 먹고 대담해지면서는 머리카락을 더더욱 기르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대담하고 부지런한 친구들은 거의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걸리지 않기 위해 학주를 위시한 보스몹 군단이 아직 교문 앞에 진을 치기 전에 미리 등교를 해서 못다 채운 잠을 채웠다. 염색을 하고 자연갈색이라고 우기는 친구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머리카락과 교복에 점진적인 수선을 했다.
수업시간에는 자켓만 입고 책상 밑으로 교복 조끼 품을 줄이기 위해 실과(가정이었던가?) 시간에 배웠던 대로 바느질을 했다. 동네마다 유행이 다르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상의는 크롭으로 짧게, 스커트는 치맛단을 늘여 롱스커트로 교복을 개조하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어떤 날엔 수업 시간 내내 입고 있던 치맛단을 풀러 내다가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이 핸드폰 하면 뺏겠다는 협박을 하는 날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는 머리를 샤기컷으로다가 확 잘랐다. 똑단발에 깻잎을 키우는 것보다는 그쪽이 덜 찐따(?) 같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15센티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정말 적었고, 우리는 우리를 서로와 다르게 구별하고 15센티 안에서의 고유성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앞머리를 뱅으로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2016년에 유행했던 처피 뱅 이전, 나에게는 일본 모델 요피가 있었고 요피 앞머리를 따라 하고 싶었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노하우도 생겼다. 머리가 그렇게 길지 않을 때에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이 묶되 대부분의 머리카락을 위와 아래에 뽕의 영역에 두는 형태로 머리카락이 짧아 보이도록 했다. 좀 더 머리가 길었을 때는, 2000년 대 초반에 대유행한 샤기컷이라고 요즘의 허쉬 컷과 비슷한데 좀 더 격하게 숱을 쳐내는 방식의 레이어드 컷팅이,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도 떳떳이 학주 앞을 지날 수 있었던 비법이었다. 짧게 잘린 부분만 밖으로 내놓고, 길게 기른 부분은 교복 안으로 넣는 형태로 학주 몹의 눈을 피해 다녔다. (이 비법은 고등학교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근데 긴 머리만 문제였을까? 우리 학교는 너무 짧게 커트를 친, 머리를 2센티 미만으로 자른 학생들에 대해서도 단속을 했다. '반항한다'가 그 이유였다. 뭐라고? 대체 학생 다움이란 무엇일까. 교칙이라고 하는 것들, 초등학교 때는 자유롭게 하도록 했던 것들을 어느 날부터 교복 안에 가두도록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 것은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는 '학생 다움'은 단정함에 있나 보다 - 하고 어른들을, 학교를 이해하려 노력하던 것들이 다 헛짓거리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머리를 짧게 자른 학생들은 머리가 길 때까지 머리가 짧은 그 상태 그대로가 오늘도 교칙 위반이라며 매일 등교할 때마다 벌점을 줬다. 머리가 길 때까지, 졸업할 때까지 종신 교내 봉사나 사회봉사를 하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악마 같은 학주몹. 짧은 머리가 어떻게 반항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삭발 투쟁을 하겠다고 머리를 밀거나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나 학교를 위협하는 주장을 한 적도 없는데. 아니, 이미 반항이라는 단어 자체가 학생을 모든 체제에 순응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해야만 쓸 수 있는 말이다. 평등하다면 쓸 수 없는 말이다. 대체 무엇에 위협을 느끼고 그렇게 그들을 단속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다닌 여학교에서 (머리가 짧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머리가 짧은 학생들은 그들의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성애의 대상이되기도 했고, 혹은 짧은 머리를 통해 그들의 성적 지향을 나타내며 동성 간 연애를 하기도 했다.
교칙에 마련되지 않은 항목, 사랑 금지. 그들은 교칙에 마련되지 않은 사랑이라는 항목에 금지를 붙이고 처벌하고 벌주고자 머리카락을 핑계 삼았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얼마 안 된 일 같은데, 거의 20년이 지났다. 다행히 그동안 세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번 글을 쓰며 두발 규제가 사라진 지 오래된 것은 들었어도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지가 궁금해 교사를 직업으로 하는 친구들에게 학교에서의 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복장과 머리카락뿐 아니라 외모에 대한 규제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했다. 80년 대 생 할미에게는 놀라운 변화이고 반가운 변화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따르면 여전히 속옷의 색이나 속옷의 착용 여부, 액세서리의 색 등을 규제하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한다. (기사 보기) 불필요하고 반인권적인 용의 복장규제는 더 강력히 철폐되어야 한다.
외모뿐 아니다.
머리카락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는 그랬대. 믿을 수 없어!'라고 하는 반응들이 있을 것이다. '사랑 금지' 항목에 대해서도 그래야 한다. 성적 지향과 정체성으로 차별이나 불평등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제2장 제1절 제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1항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 조례의 경우 성별 정체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된 것인가?
현행 지자체 인권조례 가운데 차별금지 사유를 열거하면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거나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포함한 조례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대전광역시 동구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광주광역시 학생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등 8개 지자체의 11개 조례뿐이다. 이 현황 역시 6년 전보다 후퇴한 결과다. 2014년까지는 11개 지자체의 18개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했지만 이후 7개 조례에서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를 빼거나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삭제했다. (2020.4.3, 한겨레, 원문 보기)
2020년 위 기사처럼, 기존의 질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만큼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고 손을 내리고 눈을 깔고 반항하지 말라고 한다. 지난 6월 10일에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가칭) 출범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51개 단체의 참여를 통해 있었다.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에 따르면 지난 7월에만 해도, 청소년 성소수자 대상 자살위기 상담이 12건이었다 한다. 학교에서의 혐오표현과, 가정에서의 혐오표현에 다치고 아플 아이들이 너무 많다. 머리카락이 당연히 규제와 차별의 대상이 아니듯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역시 그래야 한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더 목소리 높여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그때는 미처 몰랐던, 짧은 머리를 하고 동성연애를 하던 친구와 선배들, 청소년 레즈비언 (혹은 바이섹슈얼, FTM 트랜스젠더, 혹은 기타 등등의 정체성과 지향을 가졌을 이)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머리카락으로 특정되고 타겟되어 날씨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벌'을 끝내기 위해서 교정을 청소했던 그 마음과 빗자루 잡은 어린 손을 생각한다. 그냥 예쁘고 싶어서 머리카락을 기르고 벌점을 피해 다녔던 나와 달리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줄 알면서도 기어이 머리를 자르고 자신을 드러내며 존재에 대한 인정투쟁을 했던 것일지 모르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내가 학생 A가 아닌 내가 되기 위해 머리카락을 도구로 삼았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견딜 수 없었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졌지만 상처는 더 많이 받았을 아이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 그 손을 잡고 등 두드리며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뿌려진 벌점을 거두고 함께 싸워줄 어른들과 청소년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조례보다 상위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조례 폐지 같은 혐오의 움직임을 결박해야 한다. 헌법과 국제 인권법이 이야기하는 가치가 차별금지법에 반영되어 인권이라는 가치를 공고히 명문화해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을, 상처 받는 아이들을, 존재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20년이 지났으므로. 더 이상의 나중 없이, 바로 지금.
▼ 지금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모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