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랑으로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미선에게
3년 간의 중학교 생활은 꼭 억압하고 강제하는 그런 학교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러모로 끔찍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제일 어렵게 느껴지던 시기였고.
그 시기를 지나 보내고 진학한 고등학교는 공학이라는 점, 다양한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섞이는 학교라는 점 같은 것이 조금 달랐다. 전체적으로는 고등학교가 훨씬 즐거웠다. 하지만, 학교가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했다. 일정 길이 이상 넘지 않을 것, '학생다운' 헤어 스타일일 것. 달라진 점을 꼽자면, 공학이었기 때문에 머리카락에 대한 규제와 폭력이 남학생들의 머리카락에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점 정도? 그리고 정말 달라진 점은, 그런 규제를 대하는 내 태도가 훨씬 더 무시와 냉소에 가까워졌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학교 분위기를 살폈어야 하는 1학년 때는 적당히 교칙에 맞는 길이로 머리를 잘랐다. 처음부터 찍히면 피곤하니까. 그 이후 머리가 더 길었을 때는 이미 중학교 때 갈고닦은 머리카락 숨기기가 익숙했기에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망을 피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때마침 보아의 울프컷이 유행하던 시기 었고, 엄청 레이어드 친 머리는 유행에도 편승할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머리카락 숨기기는 더욱 용이했다. 문제는 내 안에 펌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자랐다는 것 정도?
고등학생이 되고선 정말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나는 내가 남들과 구별되는 것에 진심인 관종이라는 것을 알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제일 먼저 하고 싶던 것은 귀를 뚫는 거였는데, 귀를 뚫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코(노스트릴)를 뚫었다. 화장품이나 밴드, 투명한 실리콘 피어싱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얼마 안 되어 걸렸다. 코 피어싱을 걸리고 나서는 콧구멍(?)을 막고 귀도, 코도 뚫지 말라는 엄마의 엄포가 있었다. 그래서 배꼽을 뚫었다. 뭔가 뚫을 때마다는 싸이월드에 자랑을 했다.
엄마는 그때 그냥 내가 이런 애라는 걸, 그냥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런 것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두지 않으면 더 급진적인(?) 무언가를 하고 올 애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꾸밈이나 스타일이 나의 학업이나 학생 본분에서의 '엇나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학교보다 무서운 엄마의 암묵적인 인정을 뒤에 업고 고등학교 2학년 겨울, 펌을 감행했다. 돈도 많이 없었다며 그 돈은 어디서 났냐고? 급식비를 환불받았다. (다행히 굶지는 않았는데, 점심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나눠주고 석식은 학원 때문에 일찍 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빌어 먹었다.)
고등학교는 머리 규제 길이가 좀 더 길었기 때문에 똥머리를 하고 등교를 하면 웬만해서는 펌을 한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깻잎에 펌 콤보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준관종인 나에게는 정말 중요하고 기뻤다.
그러던 고2 어느 날, 펌한 머리를 풀고, 존재감을 뿜고 다니고 싶어 머리를 풀고 복도를 걷는데 교장 선생님 (이하 교장)이 나를 발견하고 불렀다. 잘 기억은 안나는 대화인데 (설렁설렁 들었나 보다.) 머리를 원상복구(?)하고 오라는 것이 요지였다. 대충 대답하고 계속 머리를 유지했다. 급식비를 털어한 머린데. 암. 버텨야지. 버티면 버텨지겠지, 그냥 넘어가겠지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어느 날 수업 시간 복도를 어슬렁 거리며 교장이 지나가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니, 왜! 처음부터 머리를 처박고 책만 보거나 했다면 눈을 안 마주쳤을 텐데! 스스로를 자책하며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얼른 머리를 묶고 고개를 푹 숙이고 모른 체하려고 했는데, 'ㅇr뿔ㅆㅏ★' 딱 걸려버렸고. 교장은 화가 나서 담임 선생님(이하 담임)을 불렀고, 담임은 교장의 화에 본인의 화를 이자로 붙여 나를 다시 불렀다는 뭐 그런 뻔한 얘기.
그다음부터는 적이 증식했다. 교장뿐 아니라 담임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조회와 종례도 피해 다녔다. 그런데 학교라는 땅이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으며, 피한다고 해도 결국 매일 등교하는 착실한 학생이었던 내가 시간을 이겨봤자 얼마나 이기겠는가. 결국 뻥 뚫린 운동장에서 30m 거리의 교장 눈에 띄어버렸고!
"야, 너 이리 와 봐."
하는 교장 말을 듣고!
"으악"
하며 도망쳐버렸고!
화가 난 교장은 다시 한번 담임을 찔렀고!
담임은 공사가 다 망한 와중에 바쁘실 텐데 굳이 친히 집으로 전화를 걸어주시었다.
집에 왔는데 엄마가 무심한 말투로 담임한테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엄마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나는 잔뜩 긴장했다. 무슨 얘길 어떻게 했을지 모르니까. 당사자 없이 그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떨리는 구석이 있는데 그 대화의 주체가 엄마와 담임이라니? 떨렸지만, 떨리는 티를 그대로 내면 엄마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할까 봐 짐짓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뭐래?"
"아니 뭘 뭐래~ 뭐 너 펌한 것 때문에 교장이 화가 많이 났고 머리 펴오라고 하지."
"그 말 밖에 안 해?" ('오, 다행이다. 머리카락이면 내가 예상한 영역이야.')
"아니~ 그거 말고도 뭐 너 자율학습 시간에 #*$(*^()!()4~. "
담임은 펌에 대해서, 펌을 하고도 이를 다시 펴오라는 (?) 거듭된 권고를 무시하는 나의 불량한 태도에 대해서, 펌을 한 머리로 남학생들과 불건전한 관계를 (아니, 난 그때 보수적인 유교걸이라 학생이 섹스하면 죽는 줄 알았다고!) 가지는 것에 대해서 엄마에게 고해바쳤다고 했다.
아니, 그렇게 말했다고? 하지만 이럴 때 일 수록 당당하게 말해야지 싶었다. '쪼그라들면 켕기는 게 있어 보인다! 정신 차리자!' 마음을 다잡고, 여차하면 엄마의 답변과 그에 따라오는 담임의 말에 대한 엄마의 생각에 대해 반격할 공격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날을 잔뜩 세우고 물었다.
"하! 웃긴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아, 다 아는 얘기라고 했지. 너희 담임이 이르려고 전화했는데 내가 다 아는 얘기라고 하니까, 오히려 당황하더라. 그리고 그랬어. 애들이 공부한다고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우리 아이가 펌 하는 것 정도는 그냥 둬도 될 것 같다고. 우리 애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한 걸 하고 오니까, 그러니까 그냥 두시라고 했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나도 잠깐 당혹스러웠는데 갑자기 전화한 담임이 불쌍해졌다. (쌤, 솔직히 말하면 사실 그땐 통쾌한 게 더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왜 그러셨어요. 물론, 나이가 든 지금은 쌤도 중간관리자로서 사는 게 영 쉽지 않았겠다 싶네요. 맘대로 되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럴 것 같아요. 지금은 두발자유라고 하니 쓸데없는 걸로 집에 전화하지 않고 계시길 바랍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와, 애만 아니라 엄마도 쌍으로 꼴통이다 싶었겠다."
"그러게~ 쌍으로 경우 없다고 생각했겠다, 얘. ㅎㅎㅎㅎㅎ"
꼴통 모녀가 되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인정한 것 같은 경험. 여기에 이르기까지 나와 전혀 다른 모양새의 보수적인 엄마와 나 사이에는 치열한 반목의 역사가 있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공부는 정말 못했지만 선생님 말을 잘 들어 예쁨 받던 학생이었다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칙이 막는 것을 못 견디는 타고난 반골이자 관종력이 동반된 꾸밈을 지향하는 사람이고. 우리 사이에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디고, 미워하고 소리 지르는 시간들이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날뛰는(?) 나를 교육하기 위한 폭력도 동반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악쓰며 엄마에게 말로 상처 주던 시간들이 있었다.
물론 이 날 이후로도 나와 엄마는 사랑하고 반목하고 상처 주고 치유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함께 마주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날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학교에서 나는 더 이상 펌한 머리를 원상 복구하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다. 학교에 있을 때는 묶고 있으면 좋겠다는 권고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타협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머리는 엄마가 지켜냈다. 이 에피소드를 사랑한다. 내 머리카락을 지켜낸 엄마가 고마워서기도 하지만, 그 당시 50이 넘은 엄마가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통해 본인의 세상을 넓힌 이야기이기 때문에. 원래의 엄마라면 상상하지 못했을 '꼴통됨'을 기꺼이 수행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딸을 컨트롤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다른 한 존재로서 온전히 옹호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내게 머리카락을 준 엄마는, 그러니까 미선은, 그 머리카락이 온전히 나의 것일 수 있도록 내 존재를 지켜냈다. 그 과정에서 미선은, 미선이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던 생각, 세계를 한 존재를 사랑함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기꺼이 미선 됨을 바꿨다. 나는 그런 사랑을 엄마로부터 배웠다.
+ P.S. 미선, 미선은 늘 걱정하지. 요즘 내가 쓰는 무언가에 머리카락 아프게 묶고, 매직 안 해주고, 머리에 이 생기고 하는 얘기만 적으면 엄마가 뭘로 보이겠냐고, 좋은 얘기 좀 쓰라고. 미선이 걱정하는 이야기들 속 미선의 모습도 나는 충분히 좋다 생각하지만, 이번 '꼴통 미선' 이야기는 확실히 미선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맞으니, 혹시 나중에 미선이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다른 글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노여움을 이 글로 풀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