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머리카락에 대한 첫 기억

김무스도 스모선수도, 승무원도 아닌데

by 졔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에 대한 첫 기억이 어떤 것일까? 몇 살 때 어떤 기억들로부터 시작될까?


유아기에서 유년기,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늘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정의나 아름다움이 타인과의 비교 대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미(美)의 평가 기준이 다양하고 개별적인 것 같아도 결국 높은 비율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하던 시기였고, 인간의 미를 구성하는 데 있어 머리카락이 얼마나 그 영향력이 지대한지 모르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는 말이다. 내 머리카락이 어떠하든, 내 머리카락이 내 행복에 손톱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하던 시기.


그랬던 때지만, 머리카락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때, 손톱만큼 까진 아니지만 손톱 반의 반 정도만큼의 불만이 있던 적을 곱씹으면 주로 엄마의 야무진 손놀림이 내 머리를 분주히 만지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엄마는 야물딱지고 꼼꼼한 손으로 높게 머리를 묶어 올려 나를 화난 얼굴로 만들었다. 두피에서 머리카락들이 뽑히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빠짝 당겨 머리를 묶곤 했던 것인데, 너무 두피가 당겨지다 보니 눈꼬리도 덩달아 치켜 올라가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두피와 눈꼬리의 방향을 따라 올라오는 아픔에 나는 종종 화가 나곤 했다. 5살 ~ 8살에 유독 그런 기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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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놀림의 결과물. 하나 같이 팽팽히 머리카락이 당겨져 있다. 젤, 에센스 등 머리에 바른 것은 전혀 없이.


엄마는 내 머리카락의 장력과 복원력을 너무 과신했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때는 저렇게 묶인 머리카락은 뿌리가 뽑히는 적들도 있었으니까.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머리를 묶어주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엄마는 주로 하나로 올려 묶을 것인지, 두 갈래로 묶어줄 것인지에 따라 목덜미의 잔털을 빗어 올리는 동작이나 롤빗 손잡이의 뒷 꽁무니를 활용해 5:5 정 가르마를 타는 동작으로 머리 묶기를 시작했다. 곱슬인 내 머리의 엉킴 상태에 따라 빨간 도끼빗의 손잡이로 전처리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다음에는 주로 심플한 방울이 달린 머리 끈으로 머리를 묶어줬는데, 너무 세게 묶어 머리를 묶다가 머리끈이 끊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면 미선은 고무줄만 짱짱한 새 것으로 갈아 다시 짱짱하게 내 머리를 묶곤 했다.


으레 머리를 만져주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내맡긴 사람의 뒤에 서듯, 엄마는 내 뒤에 앉아 머리를 묶어주었다. 싸구려 PVC 장판 위에 앞 뒤로 나란히 앉아 시작하는 머리 묶기는 종종 엄마가 빠짝 내 머리칼을 빗어내며 당기는 힘에 내가 뒤로 발랑 넘어가며 엄마의 가슴가에 뒷머리를 누이는 것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엄마는 엄마 힘에 따라오지 말고 버티라고 했다. 나는 내 최선을 다했지만, 엄마 품에 누워버리지 않기란 그 당시의 나에겐 꽤 고난도의 작업이어서 실패하고 엄마 품으로 쏟아져 눕기가 일쑤였다. 당겨내는 힘도 힘이었지만, 버티면 버틸수록 당겨지는 두피가 아프기도 했기 때문에 버텨내길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당시 내 정수리는, 당기는 힘에 순응하고 아픔을 덜기 위해 그대로 딸려가 엄마 품으로 기대고 싶은 욕구와, 빠르게 이 고통의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엉덩이를 무겁게 아래로 두고 허리를 살짝 앞으로 숙여 엄마의 의도대로 팽팽히 머리의 장력을 맞추며 엄마의 힘에 저항하고자 하는 체념의 접전이 펼쳐지는 아레나였다.


엄마는 견인성 탈모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내 머리를 묶어주던 시절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들을 통해 우리 엄마의 엄마 된 모습과 친구들의 엄마 된 모습을 비교한다. 아이를 둔 친구들이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주고, 매만지고, 안아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원래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의 머리를 세게 당겨 묶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그럼 대체 엄마는 왜 머리를 그렇게 세게 묶어주려 했을까. 나와 함께 둘째도 양육해야 했던 시절의 33세 조미선은 꽁꽁 내 머리를 동여 묶음으로써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대학에 가지 못했던 설움을 한 여대의 평생교육 강좌에 등록해 유아교육을 배우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가정 어린이집을 인가받던 그 시절 딸 둘도 챙겨야 했던 조미선의 일과를 생각해 본다. 잠이 많아 눈을 비비고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 내 머리를 묶던 미선. 충분히 고되고 바빴을 시절의 미선. 머리를 꽉 묶어내야 어린 나의 활동량을 버텨내고 머리 모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어서 세게 묶었던 걸까? 맥없이 풀려버린 머리를 여러 번 묶어 주기엔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던 엄마가 시간을 벌고 싶었던 걸까?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다.


앗, 근데 에너지 때문이라면 아예 머리를 묶어주지 않는 옵션도 있었을 것이다. 이내 머리를 꽉 묶는 매일 아침의 미선의 리추얼은, 에너지 보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럼 대체 왜? 다행히 아직 미선은 살아있고, 미선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물었다.

" 미선, 근데 나 어렸을 때 왜 맨날 머리를 그렇게 세게 묶어준 거야? "

미선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 아니, 그것 때문에 전화를 한 거야? 너 요즘 정말 사는 게 힘들구나? "

(음,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 작가의 거리만큼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아니라고 전화기 너머로 도리 짓을 하자 그 공기가 전해졌는지 미선은 골똘하게 생각하다 답한다.

" 글쎄~ 나는 그냥, 깔끔한 게 좋아서. 네가 또 이마가 좁으니까, 위로 뒤로 싹 올려 묶으면 이마도 좀 훤 해 보이고 깔끔하니까. 나는 그냥 그게 좋아서 그런 것 같은데. 내 취향인가 봐. "

" 내가 아프다고 했던 건 기억나? "

" 에이~ 그건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지. 엄마가 그렇게 네 머릴 세게 당기지 않았는데? "


실없는 전화통화 끝에 나는 깨닫는다. 하, 나 또 지나치게 비장해서 과한 해석할 뻔했구나. 가부장제에서 자아를 잃던 한 주부의 어쩌고 같은 이야기로 내 맘대로 타인의 삶을 해석할 뻔했구나. 물어보길 잘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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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2~3살 때도 엄마는 몇 가닥 안되는 머리를 올려 묶어 올렸던 듯 하다.


그리고 분하다. 근데, 잘못 기억한다니? 미선은 나보다 오래 어른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가끔 가스 라이팅을 한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는 내가 가장 잘 기억하는데 뭘 잘못 기억한다는 건지 어이가 없다!... 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지금이 찰나의 키보드를 치는 순간 문득 생각나는 감각들이 있다. (하, 짜증 나.)


엄마가 머리를 만져줄 때, 엄마가 나를 품으로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당겨 엄마 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안기게 될 때 느껴졌던 그 충만감, 그 충만감을 충실히 반영했을 내 얼굴 근육의 움직임. 5:5 일자 가르마가 아닌 다른 걸 해달라고 졸랐을 때 지그재그로 머리 위를 가로지른 가르마를 내기 위해 오랜 시간 내 머리 위에 머물렀던 늘 유독 뜨거운 엄마의 손. 그렇게 남은 지그재그 형태의 가르마와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엄마가 좋아서 기분도 덩달아 좋았던 것, 머리 위에 지그재그 가르마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날들.


엄마2.png 그리고 가끔 자연스럽게 풀어두었던 머리


불만보다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의 순간들.


왜 머리를 세게 당겨 묶었는지 큰 뜻이 있었나 싶었는데 하나도 없고 단순한 미선이는 나랑 참 다르다. 한 마디로 자기 맘이라는 거잖아. 또 늘 내가 기억하는 무언가 이상으로 더 기억하고 있어 얄밉다. 온전하지 않던 내가 내 머리카락에 대해 기억하는 가장 첫 순간을 반 쪽짜리에서 완성하게 만드는 사람. 이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나를 계속 완성해가는, 나를 완성하는 내 뗄 수 없는 조각. 그래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얄미워하는 사람. 나를 늘 많이 오해하지만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나에게 머리카락을 준 사람.

내 머리카락의 시작에는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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