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우리는 정수리에 아레나를 이고 산다

몸이지만 몸이 아닌 것,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by 졔졔

세계 인구가 78억이라 한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에 현존하는 정수리의 개수도 78억 정도일 것이다. 그 정수리에는 머리카락이 붙어 있을까? 까만 머리카락, 노란 머리카락, 빨간 머리카락, 갈색 머리카락,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잘 관리되어 윤기 나는 머리카락,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카락, 짧은 머리카락, 긴 머리카락, 갓 태어난 아기의 솜털 같은 머리카락, 알록달록 한 염색한 머리카락을 떠올려 본다.


붙어있길 바라는 주인의 열망과 달리 사그라져버린 모근에서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정수리도 떠올려본다. 머리카락이 없는 정수리 위에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가짜 정수리에 엮인 인모와 가모로 만들어진 가발과 실리콘 가짜 정수리를 진짜 정수리에 맞춰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만들어 보려는 손놀림도 생각해본다.


그렇게 정수리에, 귓덜미에, 이마에, 목덜미에서 자라는 머리카락을 생각하다 보면 그 머리카락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타일'도 떠올리게 된다. 롤의 두께에 따라 물결펌, 히피펌, 여신펌 등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웨이브의 형태, 컷팅 스타일에 따라 허쉬컷, 투블럭, 똑단발, 숏컷, 반삭(발), 언더컷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머리 모양. 오색찬란한 다양한 컬러링.


이렇게 해볼 수 있는 머리카락의 모양이 많다니 나같이 다채로운 것을 시도하고 변화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들을 죽기 전에 다 해볼 수는 있을까, 어떤 스타일을 해볼까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통제되지 않는 것이 많은 세상 일과 다르게 내 머리카락에 대한 권한, 내 몸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선택하고 시도하고 결과물을 내보는 데에는 길어도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내가 바라보는, 보이고자 하는 내 모습을 간편히 투영하고 어디에나 지참할 수 있다는 점이 머리카락의 모양을 바꾸는 일의 매력이자, 권리이다. 전셋집 인테리어를 바꾸는 일, 좋은 옷을 한 벌 사는 일, 풀 메이크업을 하기 위한 화장품을 사는 일보다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표현 비용으로서 가성비도 높다.


하지만,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나. 머리카락으로 표현했을 때 져야 하는 책임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셀프 미용이 아닌 이상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미용비

탈색할 때 따가워도 참으라고 해서 너무 참았더니 타버린 두피를 식히고 보살피는 일

탈색하고 염색한 후 올라오는 까만 머리카락과의 경계선을 견디는 일

기분에 따라 확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다시 기를 때 발생하는 거지 존 입성과 탈출의 시간을 인내하는 일

여러 스타일을 시도하다 풀이 죽어버린 머리 끝에 대한 책임 - 그것이 계속 정수리에 머리칼을 달고 사는 일이던지 잘라내고 보내주는 것이던지

등이 있다.


사실 위에 적은 내 머리카락에 대한 내 책임은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수용 가능한 책임의 영역이다. 사실 진짜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원치 않지만 계속 종용받다 보니 그래야 할 것 같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아니, 내 정수리에 달린 내 머리카락 내가 맘대로 하겠다는데 내가 가장 많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왜 타인의 시선인지, 혹은 타인의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을 단단한 마음을 품는 것인지 당최 모르겠지만, 이런 내 외침과 별개로 내 머리카락을 내 마음대로 하는 권리에 따라 가장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는 것이 된다.


아마 세상이 눈치챈 것 같다. 누군가의 고유성을 가장 가성비 높게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머리카락을 각자가 원하는 고유한 모양에 따라 바꾸는 것이란 것을.


애플에서 나를 닮은 이모티콘을 만들 수 있는 미모티콘을 보면, 컬러 베리에이션을 제외하고 피부는 16종, 눈썹은 9종, 눈은 18종, 얼굴 모양은 15종에 불과한데 헤어스타일은 129종으로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머리카락은 발가락 털부터 배꼽과 심장을 지나 정수리 끝에 다다른 개인의 존재감이 터져 오르는 거대한 분수 구멍인 것이다.


미모티콘 헤어스타일 너무너무 다양해!



그러니 세상이 눈치챈 것 같다. 머리카락은 무엇보다 통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고유성이 발현되면, 사람들은 사회 지배 체계나 이데올로기가 말하는 것과 달리 자신을 좀 더 구체화하고 각자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을 만들어가며 각자의 모양으로 빛난다. 고유의 강점을 찾는 것은 임파워링(empowering)의 영역이다.


임파워먼트 된 개인은 자신의 강점과 가치를 인식하고 자신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가지며, 삶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개발하고 내적인 힘과 행동력을 증진한다. (김정미, 2004)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규격화된 형태로 기존 지배 체계가 이야기하는 질서를 따르게 하는 교육, 훈련,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를 주입하는데 세상은, 혹은 사회의 주류는 (그들 스스로 주류라고 인지하고 못한 상태일지라도) 많은 힘을 들인다. 질서를 벗어나고자 하면 낙인을 찍고, 페널티를 부여한다. '질서를 벗어나는 행동'은 어떤 거대한 변혁이 아니라 투쟁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일, 기존의 질서에 약간의 금을 내는 일, 완벽하게 한 줄로 늘어진 정렬에서 점 하나가 10cm 밖으로 벗어나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아는 듯하다.


머리카락 한 올의 색과 머리카락 한 올의 길이와 머리카락 한 올의 노출에서 그들의 거대한 세계는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어떤 헤어스타일을 할 때 회사의 동료나 직장 상사가, 학교 선생님이, 부모가, 종교 지도자가 반응하는 면면을 보면, 그들의 불쾌감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나 스스로 조금 더 고유성을 드러내고자 혹은 관심을 받고자 (관종인 것도 행인 A가 아니라 고유성을 인정받는 개인으로 인지되고 싶은 것일 테니) 한 헤어스타일을 했을 때 낙인과 페널티, 억압의 반응들은 더 도드라지곤 했다. 개인의 경험을 섣불리 어떤 '현상'으로 치환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성경의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쓰지 못한다. 안구도 뽑혔기에 문자 그대로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긴 머리카락이라는 고유성을 가졌던 개인이 Not empowered 되면서 삼손이 더 이상 삼손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생각했던 유교 문화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머리를 함부로 자를 수 없게 했는데 나는 이를 개인을 한 고유한 개인이기보다는, 부모 하의 존재로서 부모가 물려준 머리카락 - 외에도 각종 레거시 - 을 존치하는 존재로 여겼다고 해석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다시 파리를 나치로부터 수복했을 때, 프랑스 남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정말 사랑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나치 독일군과 관계를 가진 여성들을 대중 앞에 끌어내어 강제로 머리를 삭발시킨다. 마치 나치가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보내며 강제로 삭발시켰던 것처럼. 그들은 달랐으나 결국 같았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은 (그리고 그 문화를 우리는 오랜 세월 답습했는데) 학생들의 머리를 모두 깎아 모두가 같은 머리카락의 형태를 갖도록 했다. 1970년 대 한국의 군부통치 시절에도 장발을 단속했다. 군대와 개인 이전에 국가가 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머리카락을 통제해서 개인의 고유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의 숏컷을 둘러싼 '질서를 따르지 않는' 머리카락을 페미니즘과 결부시켜 이를 비난하는 이들, 이에 못지않게 꾸밈 노동에서의 탈피를 주장하며 탈코/탈코르셋을 통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동시대에 존재한다. (물론, 두 주장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이 둘을 동시에 소개한다고 해서 이 두 집단이 주장하는 ~ism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 탈코/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일부가 긴 머리카락을 고수하는 여성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결국 머리카락이 한 개인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전파하는 수단으로 머리카락을 대하는 시선이다. (참고로 현재 시점 기준으로 나는 숏컷도 넘실대는 긴 머리도 아닌, 어깨 선을 닿는 머리가 폐허의 잡초처럼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페미니스트이다.)


그 외에도 아우슈비츠에서 억지로 삭발을 시킨다던가, 유대교/이슬람교/천주교에서 정도 차이는 있으나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리도록 하는 지점이라던가, 머리가 짧은 여성을 두고 '남성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무례 등을 통해서 우리는 매번 머리카락에 얽힌 크고 작은 싸움들을 경험한다.


헤어 스타일에 따라서, 싸우는 주체는 달라지기도 한다. 머리카락에 경제력을 투영한 싸움일 수도 있고, 페미니즘과 성차별주의 간의 싸움일 수도 있고,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머리카락에 담긴 추억과의 싸움일 수도 있고, 머리카락이 없거나 안 나서 나 스스로랑 싸우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정수리 위에서 매일매일 전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수리에 아레나를 이고 산다.


+ P.S

다소 인트로가 비장해진 것 같아 나도 괜히 마음이 무거운 글이 되어버렸지만, 앞으로 몇 편까지 일지는 몰라도 지독한 곱슬로 태어난 내가 약 17년 간에 걸쳐 시도했던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헤어스타일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해보려 한다. 누군가 해보고 싶었던 헤어 스타일을 내가 먼저 해본 것이 있다면 팁을 얻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공감하고 수다 떠는 장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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