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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Sep 05. 2019

#36. 악마의 신발

 당신은 악마의 신발을 본 적이 있는가. 악마의 신발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나.


 얼마 전 악마의 신발을 직접 보고 신을 기회가 있었다. 그 신발은 검은색 구두로 일반적인 신발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매장 직원은 평소 신는 신발 사이즈보다 크게 신는 게 좋을 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악마의 신발을 신어 보라 권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리 평온할 수 있는가.

 소문과 달리 신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이게 왜?라는 의문만 들었다. 나는 당당히 그 신발을 택했고 자리에서 결제했다. 영수증이 필요하냐는 직원의 물음에 이곳에 돌아올 일은 결코 없을 거라 다짐하듯 버려달라고 했다.


 악마의 신발은 자신이 왜 악마의 신발인지 조금씩 드러냈다. 과연 악마답지 않은가. 대놓고 드러내는 건 착한 편에 속한다. 진짜는 야금야금 뜯어간다. 좀먹는다.

 처음으로 그 검은색 구두를 신고 출근한 날. 놀라울 만큼 아무렇지 않았다. 혹시 몰라 가방에 밴드를 넉넉히 챙겨갔으나 꺼낼 일이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악마의 신발임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발을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이 신발을 길들이는 데 실패하여 결국 새것이나 다름없는 구두를 중고로 팔았다고 했다. 나는 악마에게 선택받은 것일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상처 하나 없는 발을 보고는 내심 흐뭇해하며 악마의 신발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



 뒤꿈치가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가시나무가 된 줄 알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는 가시나무 말이다. 발 전체가 그랬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는 파이고, 복숭아뼈 근처는 반달 모양으로 붉은 선이 드러났다. 발등은 믿는 도끼가 아닌 딱딱한 구두 가죽에 찍히고 있었다.

 분명 괜찮았는데, 처음 신고 간 날에는 평상시 신던 워커에 비해 가볍고 바람도 통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평소라면 집에서 3분 만에 갈 정류장을  8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느리게 걷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자니 버스가 떠날 것이고 지각이 분명했다. 아프지만 참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악마의 신발이라 불리는 이 구두를 발이 찢기는 고통을 참으며 길들여 신는다고 했다. 나도 길들여 보기로 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처럼. 여우는 어린 왕자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즐거워질 거라 했다. 나는 악마의 신발(망할 놈의 구두)을 또 신겠다고 마음먹은 출근 전날 밤부터 즐거운(착잡한) 마음으로 밴드를 두둑하게 책상에 올려두었다. 아침에 붙이고 나설 밴드와 회사에서 바꿔 붙일 밴드 그리고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붙일 밴드까지. 이 정도면 거의 10인조 밴드 아닌가.


 퇴근 후 샤워할 때가 되면 괴로워진다. 물이 닿을 때마다 얇은 회초리로 때리듯 뒤꿈치가 따갑다. 아킬레스를 다친 아킬레우스처럼 엉엉 울게 된다. 엄살이 아니다. 그 튼튼한 아킬레우스도 뒤꿈치(아킬레스) 때문에 죽었다. 아기장수 우투리. 콩 한 알이 부족하여 갑옷이 겨드랑이를 가리지 못해 그 부분에 화살을 맞아 죽은 우투리처럼 뒤꿈치의 상처는 뭘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밴드를 덕지덕지 붙여도 소용없었다. 순간의 아픔을 덜 수 있더라도 살이 조금씩 깎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린 왕자는 여우를 두고 떠나고 아킬레우스와 우투리는 죽는다. 나는 왕자도, 신의 아들도, 날개 달린 아이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다. 일개 회사원인 나는 인간의 힘으로 악마의 신발이라 불리는 구두를 아직도 신고 있다. 지금은 꽤나 적응이 되어 이전에는 8분 걸리던 거리를 5분으로 당겼다. 성장하고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 답답해하며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 아픈 데 뭐하러 참으면서 신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내 마음이지."


 그렇다. 내 마음이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게 아니라면 지가 어쩌겠는가. 악마의 구두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구두라도 자기가 신고 싶으면 신는 것이고, 천국에서 떨어진 구두라도 거부하고 싶다면 거부할 일이다. 그게 인간의 아이러니하면서도 멋진 모습이라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랄까.

 보라, 악마의 신발을 신으면 이런 헛소리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악마의 신발이 궁금하다면 언제든 물어보길 바란다. 당신도 신을 수 있다. 내가 처음 구두를 살 때 만났던 매장 직원처럼 환하게 웃으며 친절히 안내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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