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 일기장을 발견했다. 검은 인조가죽으로 덮인 일기장을 펼치자 달력에 써놓은 작은 글씨들이 보였다.
우리 정혜 용돈 준 날.
우리 정혜랑 임진각 간 날.
우리 정혜랑.
우리 정혜랑.
정혜(가명)는 어머니 성함이다. 실명을 쓰고 싶지 않아 비슷한 이름으로 대신했다.
야근인지 술자리였는지 어떤 연유로 집에 늦게 들어간 날. 안방에서 주무시고 있는 어머니를 슬쩍 살피곤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핸드폰이 울려 살펴보니 당시 좋은 마음을 주고받던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답장을 하려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그러니까 이제 그녀는 누구와 사랑을 하지.'
아버지는 죽었다. 어머니의 남편이자 애인은 떠났다. 결혼 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만을 허락하기로 법적으로나 마음으로나 동의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떠난 것이다. 남은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 이제라도 멋을 내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러 다녀야 할까. 그게 쉬울까.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어머니가 누군가와 사랑을 했으면 했다. 자식은 그 자리를 메울 수 없으니까.
내 어머니라서가 아니라(보통 이렇게 말하는 경우 지 엄마니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사교성이 좋아 사람들에게 누군가 만나보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그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나도 지나가는 말로 좋은 분 계시면 만나보면 좋지 않겠느냐 했지만 웃으실 뿐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가 꿈에 한 번도 나오질 않는다며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자곤 했다.
내게도 이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싸웠거나, 멀리 이사 갔거나, 이민을 갔거나, 연락이 뜸해졌거나, 헤어졌거나 혹은 죽었거나.
나는 죽음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누군가를 만나라고 권하는 일이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굉장히 폭력적인 말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한답시고 내뱉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동굴로 숨어 들어가는 우리에게 남이 건넸던 말들. 동굴에서 나올 때야 그래, 그 말이 옳았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생각하게 되니까.
이제 그녀는 누구와 사랑을 하지.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 몇십 년을 함께 살다가 그 사람이 먼저 떠났을 때. 그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 권할 때 어떻게 반응할까. 웃고 말까. 아니면 남 인생 신경 끄라고 소리를 지르려나. 밤에 불을 다 끄고 누워 연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잠들게 될까. 각지고 검고 커다란 그 사진을, 품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액자를 억지로 안게 될까. 이불 밖에 늙은 발을 내놓고서.
집 밖을 나설 때마다 머리 위에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얹고 다니는 기분일 것이다. 걸을 때마다 물이 떨어져 온통 축축해지는. 젖은 꼴로 집에 돌아와 누우면 물 비린내와 그 기운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잠들 것이다.
나 혹은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