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랑 Jul 01. 2024

#03.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feat. 검은 고양이)

 애인은 저를 만나기 전 버려진 검은 고양이를 데려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따로 있지만, 여기서는 ‘검정군’이라 부르려 합니다. 검정군은 고양이답게 끊임없이 털을 날립니다. 애인의 집 곳곳엔 검은 털이 수북이 쌓여있지요. 청소를 해도 그때뿐이었습니다. 저는 애인의 집을 방문할 때면 털이 묻어도 상관없는 예비복을 챙겨갔습니다. 유난히 깔끔 떠는 저에게 고양이 털은 쥐약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검은 옷을 즐겨 입는 제게 어떻게 늘 옷에 먼지 하나 없이 다니냐, 매번 세탁소에 맡기는 거냐 말할 정도였으까요. 양말에 털이 묻는 걸 피하기 위해 현관 앞에서 벗어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무덤덤했던 저는 검정군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애인이 출장 가거나 집을 며칠 비울 때면 백수인 저는 책과 노트북, 닌텐도 스위치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집 현관을 열면 언제나 저를 올려다보며 반겨주는 검정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검정군은 신기하게도 저와 애인의 발소리는 알고 마중을 나옵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기를 돌리고 검정군을 빗겨주는 일입니다. 검정군은 골골 거리며 좋아합니다. 흔히 말하는 개냥이지요. 실은 개냥이보다 개에 가깝습니다. 배를 만져주면 좋아하고 안겨 있으려 하고 저희가 누우면 옆에 와서 함께 눕고 늘 졸졸 따라다닙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다른 분들이 검정군의 이런 성격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홀로 애인의 집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돌아보면 늘 검정군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랑은 그곳에 있습니다. 가만히 저를 쳐다봐주는 검정군의 눈, 가지런히 모은 발, 곧은 허리, 살랑거리는 꼬리에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애인은 백수로 지내는 저를 답답해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늘 바라봐 줍니다. 검정군처럼 애인의 사랑도 언제나 그곳에 있지요.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건 저를 우쭐하게 하거나 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까 고민하고 우리의 시간을 더 길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이 글의 제목이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feat. 검은 고양이)이지만, 사실 주연은 검정군입니다. 검정군에게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검정군, 애인 그리고 나. 우리가 언제나 그곳에 함께 있길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편지와 애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