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과정을,
회사는 결과를 본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두 얼굴

by eyewisdom

어느 금요일 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도 야근을 했다. 기획안을 네 번이나 수정했고,

자료 취합하느라 팀원들이 챙겨준 샌드위치 반쪽으로 점심을 때우며.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하고 보고 했건만

"수고한 건 알겠는데, 결과물이 아직 좀..." 이런 팀장의 껄쩍찌근한 반응에

그 순간,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까,

수학 시험 78점을 받아 들고 울상인 채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아휴, 아쉽다. 그래도 넌 정말 열심히 했잖아. 엄마 다 봤어. 매일 밤늦게까지 문제집 풀고."

그날 밤, 나는 울지 않았다.

점수는 낮았지만, 내 노력을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아마 그렇게 자랐을 거다.

늘 과정을 봐주었던 부모님은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숙제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라는 말로 다독여주셨고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네가 노력한 걸 우리는 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아마 자연스럽게 믿지 않았을까?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너무 차갑잖아.'라고.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얼마나 노력했나요?"가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였다.

야근을 했는지, 주말에도 자료를 찾았는지, 그런 건 누구도 묻지 않았고 보고서에는 오직 결과만 남았다.

'난 분명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 걸까.'

'내가 쏟은 시간과 노력은 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런 생각들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어느 날, 친한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회사는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건 관심 없어. 그냥 여기선 그게 기준이 아닌 거야.

그걸 너무 잔인하게 생각하지 마."

그 말을 지금 듣는다면 '선배, 대문자 T에요?'라고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때의 나에겐 온기란 1도 없는 너무도 차가운 사실의 말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혼란을 겪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과정과 결과 사이의 딜레마.

회사에서의 책임감은

'열심히 했다'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냈다'에 더 가깝다.

이건 누가 옳고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기준이 다른 것일 뿐.


그렇다고 과정이 의미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면 결과는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님의 책임감 교육은 우리를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기 충분한 방법이었다면

회사에서의 책임감이라는 건 '성과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

나는 회사에서의 생활이 한 해 두 해 쌓여갈 때쯤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SNS에서 봤던 '과정 vs 결과' 밸런스게임을 보며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과정을 성실히 밟되, 결과로 말할 줄 아는 사람.

"열심히 했어요."에서 멈추지 않고, "이만큼의 결과를 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게 좀 더 성숙해진 내가 과정과 결과사이의 딜레마에 마침표를 찍는 표현일 텐데

나는 지금 그런 모습인가?


물론 어떤 날은 결과에만 집착하다가 나를 잃어버릴 것 같고,

어떤 날은 과정에만 매달리다가 현실과 멀어지는 것 같아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과정에 스스로 떳떳하고 결과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어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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