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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04. 2018

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꽤 오랜 시간을 나는 나로 살아왔지만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했고 배려했고 이해했을까?


나는 나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는것 투성인데

때론 나를 평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아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또 그 시선에 맞춰진 나로 살아갈 때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준비된 가면이 많아진다.


여행을 떠나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는 그 말이 그냥 책에나 나오는,

여행의 환상을 부추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떠나보니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났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어디로 갈지, 어디에서 머무를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봐야 할지

온전히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길을 잃는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난생처음 와 보는 낯선 곳에서 말이다.


요즘은 구글맵이 여행의 필수가 됐지만

나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지도와 종이 지하철 노선도를 들고 여행을 했다.

구글맵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다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 디지털화된 화면보다는

종이에 인쇄되어 있는 활자가 훨씬 보기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구글맵이 나의 여행 동반자다. 대신 어느 정도 길을 익힌 후 구글맵을 끈 다음,

헷갈리는 길이 나오면 그때 다시 구글맵을 보는 것으로 스스로와 합의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사실 나는 구글맵을 아직도 잘 못 읽는다.

구글맵을 보고도 길을 잃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다고 종이를 지도를 잘 읽는 것도 아니다. 파리는 구획정리가 꽤 잘 되어 있음에도

직진 거리가 아니면 종이지도를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길을 모르면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헤매고 헤매다 결국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냈을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 스스로가 대견해서 백번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끈질기게 문제를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끝내 길을 찾아냈다.

꼭 거기에 가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영어도 못하면서 아무나 일단 붙잡고 길을 물어볼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낯을 참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길 위에서 만나 사람들에게 어제도 만난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말을 거는 나를 발견하곤 스스로 놀라웠던 적도 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늘 살가워야 하고 늘 활발해야 하고 언제나 친절해야 하며

싫은 소리를 들어도 속 없는 사람처럼 일단 웃어야 하는 나의 일에 여행에서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종이지도를 가방에 넣고 그냥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 결국 내가 처음 서 있던 그곳으로 돌아왔을 때 알게 됐다.

결국 길은 어디로든 통한다는 걸.

그러니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 무서웠지만 나는 꽤나 아무렇지 않은 척, 늘 와보는 길인 척 걸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생각보다 나는 담력도 모험심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어떤 날은 파리의 모든 길을 내 발로 꾹꾹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 외곽에 있는 숙소에서 파리 시내까지 걸어가 본 적도 있다.

2~3시간을 걸려 노트르담 성당까지 갔는데 진짜 파리의 일상 속에 들어가 걸었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었다.

걸으면서 마주하는 풍경들은 또 다른 여행의 재미니까.

(시간이 된다면 한국에서도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는 가뿐히 걸어가 보기도 한다.)


여행을 하기 전 나는 늘 10cm의 하이힐만 신었다.

회사 체육대회에도 운동화가 아닌 하이힐을 신고 나타났을 정도다.

20대 이후 운동화를 처음 구입한 건 여행을 위해서였다.

늘 하이힐을 신었던 덕분에 나는 걷는걸 참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이힐에서 내려오니 나는 걷는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 것도 여행이다.

 '절대 그럴 수 없어!'가 '그럴 수도 있지'로 변한 정도지만.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꽤나 즐거워한다는 것도

나는 늘 표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겐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는 것도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아했는데

괜찮다고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된 것도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눈 오는 날도 좋아한다는 것도

늘 흐린 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도

아침 8시 반에서 9시 사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인사를 좋아한다는 것도

책 한 줄에 사진 한장에 마음을 뺏겨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란 것도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고,

 뼘 정도는 더 괜찮은 사람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것도

모두 여행에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렇게 낯선 길 위에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만났다.

진짜 나를 만나는 일, 그렇게 나를 찾아 가는 일, 

나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일,

내가 습관처럼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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