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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24. 2018

닫혀버린 문 앞에서...

마레의 한 아파트에서 지낼 때였다.

이 집에 온 첫날 주인이 문을 열고 닫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문 여는 게 다 똑같지 뭐~'라는 생각에 주인의 설명을 대충 넘겼었다.

한국에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막 도착한 터라 빨리 들어가서 씻고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바로 다음 날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나는 문을 열지 못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위기에 처했다.


파리의 문 대부분은 문을 닫으면 안에서 잠겨버리는 형식인 데다가 문을 여는 방법이

우리나라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열쇠를 꼽고도 문이 안 열려 한참을 고생했다.

주인이 했던 방법을 되새겨보면서 열쇠를 넣고 손잡이를 돌려봐도 도저히 안됐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지? 빨리 다른 숙소를 알아볼까? 그럼 저 안에 들어있는 내 짐은?!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설명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문은 절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위층에서 구세주처럼 한 아저씨가 내려오셨다.

나는 그분께 인사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문 여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흔쾌히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드디어!

알 수 없는 연인의 속마음 마냥 답답했던 그 문을 열 수 있었다!

나는 아저씨와 함께 몇 번이나 연습을 하고서야 마음을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파리의 작은 호텔에 묵을 때도 문 여는 것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

프런트 직원 그 누구도 문 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손에 쥐어 본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몇 번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문을 밀어보곤 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두 가지가 딱 맞아떨어져 문이 열리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옆방에서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열쇠를 돌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문을 못 여는 게 나만은 아니구나 싶어서 괜한 동료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파리의 문은 열쇠를 넣고 손잡이를 함께 돌리면서 문을 밀어야 한다.

간혹 열쇠를 돌리면 손잡이도 같이 돌아가는 게 있어서 문을 밀기만 하면 열리기도 한다.

전자 도어록에 익숙한 나는, 도어록이 아니어도 열쇠로 문 여는 게 어렵지 않은 나라에서 온 나는,

정말 비합리적이고 굉장히 불편하다며 투덜댔었다.

그러나 몇 번 문을 열고 닫고 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고 수월해졌다.

그래, 조금은 불편한 게 파리의 매력이니까.


어떤 날, 누군가가 닫아버린 마음의 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굳게 닫혀버린 그 문 앞에서 몇 날 며칠을 쌀 한 톨,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울기만 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닫힌 문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

인기척도 없는 그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는 것. 나 아직 여기 있다고 간절히 말 해 보는 것.

결국 그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이유도 모른 채 떠나보내야 했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가 닫아버리고 잠가버린 문은 절대 열 수 없다는 걸.

억지를 부리고 애원해도 한번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여는 건 결국 그 문을 닫아버린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걸.


여전히 쿨하진 못하지만 누군가가 작정하고 닫아버린 문 앞에 서서 우는 일을 줄어들었다.

파리에서 문을 여는 것도, 차가운 마음을 대하는 것도 한 뼘쯤은 성장한 것 같다.


닫혀버린 문을 여는 일은 간단하다.

열쇠를 찾거나,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돌아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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