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 두 마디 주고받다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하고 하루 혹은 며칠 동안 동행을 하며
함께 길 위를 걷는 사람들도 있다.
단지 여행에서 만났다는 그 특별한 마주침이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 준다.
몇 살이냐 묻는 서열정리도 필요 없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등과 같은 선자리에나 있을 법한 딱딱한 호구조사도 필요 없다.
내가 누군지 왜 여행을 떠나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저 너와 내가 같은 방향을 걷고 싶어 하는 것, 함께하는 동안 서로를 배려해 줄 마음이 있는 것,
지금 이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있는 선한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길 위를 걸었던 우리는 다음 도시에서 다시 만나 또다시 동행이 되거나
여행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와 그때의 추억을 공유하며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저 낯선 길 위를 함께 걷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웃었던 시간들이
기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들도 많다.
한때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서글퍼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인연이었다면 다시 만날 것이고, 인연이 아니었다면 거기까지였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길 위를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날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분명히 인연일 테니까.
불교에는 '억 겁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를 '찰나'라고 한다면 '겁' 이란 헤아릴 수 조차 없이 길고 긴 시간을 말한다.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이 천 겁의 세월이 지나야 사람과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할 수 있는 인연이 생긴다고 한다.
우리가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은 500겁의 인연으로 만났고
길 위를 함께 걸으며 소소한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나눈 우리들은
무려 2천 겁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만난 특별한 인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소중하지 않은 인연이 없다.
낯선 도시, 낯선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에 대해 생각 한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없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니 내가 이번 여행에서 이 도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하고 지나쳤을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함께 대화하고 웃으며 보낸 시간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 하필 이 나라 이 도시에,
하필 지금 이 시간 이공간에서 억 겁의 세월을 지나 만난 길 위의 인연들.
가끔 일상에 지칠 때 그날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함께 만든 여행이라는 인연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있었던 그 공간과 그 시간들이 "좋았다"라고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