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재현장
<취재현장> 베이징역 파출소
나는 사건기자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그냥 경찰청에서 먹고, 자고, 씻고, 싸고, 운동하고, 24시간을 경찰들과 함께 보내는 기자였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중국에 오기 전까지 진짜 이렇게 살았다. 전주에서 만으로 6년 정도 경찰을 출입했으니까 일반적인 기자들이 2년 남짓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 길게 출입한 셈이다.
거의 준 경찰이라고 하면 맞다.
오늘은 북한공연단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잡혀가 조사를 받았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다시 자세히 설명을 해보자면,
나와 영혜는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현송월 삼지연 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공연단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역에 잠입했다.
철도청 소속 공안은 되게 거친 편인데 그게 공항과 달리 역은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모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철도청 공안은 경험한 적이 없어서 조심조심 눈치를 봐가면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북한 공연단이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공안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우린 침착하게 승객인 척하며 위장을 했고, 영혜는 특히 기자 신분이 아니어서 공안에 붙잡히면 안 되기 때문에 저기 플랫폼 앞쪽에서 그냥 열차 들어오는 것만 찍도록 지시를 내려놨다.
위험한 것은 아무래도 신분 보장을 받는 외신 기자가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열차가 들어왔고, 흥분한 일본 매체 카메라 스트링어가 동작을 크게 하면서 사달이 났다.
나는 조심조심 고지대로 포인트를 옮기고 있었는데 일본 스트링어의 큰 동작에 공안들이 예민해졌고, 내 행동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차가 도착하고 현송월이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셔터를 막 눌렀고,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공안이 다가오는 낌새가 있길래 베이징 지사 단톡방에 일단 사진을 보내두고 영혜 쪽을 살폈다.
공안에게 다가가면서 플랫폼 끝을 보자 공안에게 몰려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영혜가 보였다. 그 상태라면 영혜가 찍은 영상도 날아가고, 영혜도 붙잡힐 것 같았다.
영혜는 그 상황에서 재빨리 영상을 단톡방으로 올렸고, 공안과 영혜 간격이 줄 수록 나는 영혜가 잡힐까 봐 더 조마조마해졌다.
영혜가 붙잡히면 정말로 베이징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나야 조사 좀 받으면 한 두 번은 봐주기 때문에 여유가 좀 있으니 그 순간에 용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영혜와 내가 거의 마주치는 거리가 됐을 때 우리는 눈빛을 교환했고, 나는 "현송월이다"를 외치며 일본 매체 스트링어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 육교로 뛰어 올라갔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자 모든 공안이 내 뒤를 쫓아 왔다.
영혜는 그 사이에 승객들 틈에 끼어서 출구로 빠져나갔고, 나와 일본 스트링어 2명은 공안에 붙잡혀 역 파출소로 이송됐다.
조사는 공연단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느릿느릿 진행됐다. 붙잡힌 3명은 모두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일단 소지품을 다 검사했고, 핸드폰 두 대도 모두 가져갔다. 나야 이미 영상과 사진을 다 보내놨기 때문에 지우든 말든 상관이 없어 쿨하게 폰을 공안에 건넸다.
그리고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공안은 기본 신상 조사를 마친 뒤 나를 두 시간 동안 그대로 조사 의자에 방치했다.
심심하기도 하고 분위기도 풀어 볼 겸 누가 듣든 말든 한국에서 전북경찰청에 출입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경찰은 진짜 3D 업종이고, 너무 힘들다. 너네도 그렇니? 여기 귀빈 많이 와서 힘들지? 블라블라블라.
역 파출소에는 그사이 외신 기자가 잡혀 왔다는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내 조사실에는 구경꾼들이 문지방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드나들었다.
몇몇은 외신 기자라는 데 중국말을 제법 잘하는 내가 신기해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 말을 걸기도 하고, 한국 경찰 월급이 얼만지, 한국 경찰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이런 것들도 물어봤다.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다가 나중에는 경찰 이야기 소재가 다 떨어져 '나 사실 한국에서 맛집 블로거로 되게 유명하다'라고 뻥카를 날렸다. 그러자 갑자기 내 조사실은 먹방 정모모임으로 변했다.
공안 4명이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한테 어디 지방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나는 차오산 요리랑 강남 요리를 좋아하고, 베이징덕 글도 최근에 3편이나 썼다고 하면서 600년 전통의 삐엔이팡 역사를 줄줄줄 읊어 줬다.
다들 놀라기도 하고, 틀린 부분을 짚어주기도 하고, 맛집도 추천해 주고 화기애애하게 두 시간이 지나갔다.
그제서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내 담당 조사관이 조서 프로그램을 켜길래 "이거 한국 경찰 거랑 똑같은데?" 하니까 "거기도 이런 후진 것 쓰냐"고 되묻는데 그 상황이 하도 웃겨 둘이 엄청 웃었다.
조서 작성에 앞서 나는 조사의 성격을 물었다. 입건하는 것인지 사전 조산지 그냥 약식 상황 조사인지 말이다.
인상 좋고 앳된 조사관은 약식 조사니 걱정 말고 사실만 말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찝찝해서 집 주소와 직장 주소는 다 가짜로 불러주고, 회사에 누가될 만한 예민한 내용은 모두 교묘하게 뺐다.
조서에서 밝힌 내 진술은 간단했다.
'어젯밤에 CCTV에서 북한 공연단이 베이징에 온다는 뉴스가 나와서 진짜 오는지 안 오는지 보러 역에 왔고, 보는 바와 같이 카메라도 없이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런 것은 보도에 못 쓰는 것이고 내가 진짜 눈으로 확인하러 온 것 뿐이다'라는 말을 한 200번쯤 반복했다.(근데 폰으로 보도해 미안ㅡㅡ)
그리고 정 의심스러우면 보는 앞에서 사진을 다 지울 테니 그만 풀어줘라. 라고 하자 공안들도 내 진술을 납득하기 시작했다.
조서가 잘 작성되자 조사관은 또 시간을 끌며 우리 식구들 이야기, 비글들 이야기로 한참 대화를 이어갔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다 작성된 조서에 지장을 찍고 사인을 하라고 건넸다.
지장 찍는 것까지 다 끝나자 압수해간 소지품을 돌려줬다. 일단 1진 선배에게 연락부터 하고 나서, 사진을 다 지우고, 공안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다고 사과도 했다.
나를 조사한 공안은 둘이었는데 나이가 많은 공안 아저씨는 나에게 베이징 요리 잘하는 곳에 가려면 '쯔광위안'에 가보라고 했다. 할랄푸드 식당인데 청나라 때부터 있던 식당이고 베이징 토박이들이 잘 가는 곳이라고 했다.
손수 한자까지 써주셨는데 중국어로 하면 '紫光园' 이었다. 그 뒤에도 몇몇 곳을 추천해줬는데 내가 유명 베이징덕 체인인 취엔쥐더는 진짜 맛이 없다니까. 내가 사람 많은 데만 가서 그렇다며 취엔쥐더 허핑먼(和平門)점에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그래도 내가 끝까지 "나는 삐엔이팡이 더 맛있다"라고 하니까. 그 공안 아저씨는 허허허허허허허 웃으면서 그러니까 니가 여기 잡혀왔다고 농을 쳤다. 아마도 말을 안 듣는다는 뜻 같았다.
아무튼, 조사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조사관에게 기념 셀카를 하나 찍자고 하니 업무상 그럴 수는 없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했다. 내 번호는 이미 조서에 있으니 거기로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하고 나는 개운하게 파출소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영혜가 대사관 영사부 경찰 영사와 함께 서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눈물을 왈칵쏟았다. 내가 어디 감옥에 잡혀가는 줄 알았단다.
하기야 나야 경찰하고 한솥밥 먹은 세월이 있으니 그렇지 처음 겪는 애는 놀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는 애한테는 좀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도 좀 정색하고 따끔하게 한소리를 해줬다.
'다음부터 내가 질질 끌려가도 절대 주변에 있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 니 신변이 제일 먼저고, 그다음은 영상과 사진 확보다. 꼭 기억해라'라고 하니 영혜는 끄덕끄덕하고 입으로 답은 하지 않았다.
영혜야. 니가 잘 몰라서 그래. 니네 캡이 말이다. 살인범이고, 도주범이고, 압수수색이고 경찰이랑 같이 다니면서 나쁜놈 많이 잡았던 사람이란다. 이 정도에 기죽을 사람도 아닐뿐더러 설사 잘못되도 추방 밖에 더 당겠니?
근데 솔직히 조사받는 중간에 디테일하게 신원 물어볼 때 비자 연장 안 될까 봐 후덜덜하긴 했다. 공안이 무서운 게 아니라 갑자기 귀국하게 되면 와이프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오. 무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