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것에 대한 단상>

#단상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감히 단언컨데 베이징에서 공항을 가장 많이 간 한국사람 아니 외국인 아니 중국인을 다 포함한 모든 사람까지 범위를 넓혀도 내가 아닐까.
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만날 취재를 위해 드나들던 북한 고려항공 취항 터미널인 서우두 공항 T2 게이트 앞에 앉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니까 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T2에 온 것은 베이징에 온 뒤로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가족들과 함께 귀국을 하기 때문에 청주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이 있는 T3를 주로 이용하기도 하고, 아시아나항공의 비행 스케줄이 대한항공에 비해 훨씬 골든 시간대에 많이 배치된 것도 T2에 오지 못했던 이유라면 이유겠다.
게다가 중국 노선에 한 해서는 아이를 동반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패스트 트랙을 이용할 수 있는 에스코트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이지만 베이징에 온 뒤로 대한항공을 탈 일이 거의 없었다.(불미스런 사건도 있었고 말이지)
북한 인사들 취재 때문에 그렇게 드나들던 T2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속을 들여다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북한 인사들을 이미그래이션 앞에서 떠나 보내며 수 없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동선과는 매우 생경한 모습에 조금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했다. 그래서인지 이미그래이션 앞에서 내가 탈 KE860편이 주기된 7번 게이트까지 동네 산책하는 사람처럼 여러 번 왔다갔다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어제 베이징발 평양행 고려항공 JS152편의 게이트는 우리 게이트 바로 옆옆인 9번 게이트였다.
'그러니까 내가 사진을 찍고 고이 보내드린 북조선 나리들이 이렇게 이 길을 따라 걸어와서 저리로 간단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왜 웃음이 나는지. 드디어 미친 건가? 하기사 사생도 이런 사생이 없지 하고 생각하는데 또 웃음이 난다.
내가 베이징에 온 지 만으로 1년 10개월. 그 중 절반이 넘게 공항으로 출근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정 당직 날인 매주 토요일에는 거의 안 빠지고 공항에 나왔으니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공항 취재 대부분은 북한 취재였으니 임기 절반을 북한 취재를 위해 보낸 것이다. 마침 어제도 12시간 뻐치기를 하고 왔겠다 기분이 묘한 것이 요상타. 내가 베이징 특파원인지 평양 특파원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공항과 나의 인연이 정말 질기기도 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인 인천공항을 떠난 이유 중 하나도 그 섬 가운데 떠 있는 공항이 지독히도 답답하고 싫었기 때문이었는데 돌고 돌아 다시 공항의 지박령이 됐구나. 전생에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전투기 조종사라도 했던 것인지 공항을 벗어날 수 없는 내 운명이라니.
운명을 받아들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던데 매일 같이 운동화 밑창이 닳도록 드나든 공항이라 그런지 베이징 공항은 내 새끼마냥 어여쁘고 귀엽다. 진짜 미친게지.
이미그래이션이란 인간이 만든 사회적 규약의 선을 하나 겨우 넘어 왔을 뿐인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어서 잠이나 자자.
그래도 귀임 전에 이렇게 한 번 선을 넘어 와 보니 다음에 김영철 아재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한 마디 생겼다.
"김 부위원장님 들어가서 첫 번째 면세점보다 세 번째 면세점이 술하고 담배 종류가 더 많습디다. 살 거 있음 거기서 사시라요"
#단상 #T2 #선을넘는다는건 #새로운세상이보인다는것 #기분좋은일탈
++단상 안 쓰려고 했는데 뱅기서 할 일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몇 줄 적어 봤습니다. 제가 또 김꾸준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온수매트야 너 잘 있니?? 니가 없이 반듯이 앉아서 단상을 쓰려니 뭔가 어색하고 허전하다. 참 사람 난 자린 표 난다더니 별게 다 그런다. 나 토욜날 갈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라. 선물 사갈게. 코타츠는 아니니 걱정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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