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단상

#에세이 #단상

힘아 솟아라~~

<본전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단상>

요즘 일에 좀 치인다.
전에 비하면 엄청 바쁜 편은 아닌데 사람이란 게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면 안 일어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사실 지난해 달랑 두 명이 김정은 4연방을 막아 낼 때에 비하면 요즘 미중 무역전쟁 이슈는 신선놀음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다.
그러나 언제나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여유의 조각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내가 조금 덜 가져갔다 싶으면 괜히 서운하고,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예전 고생한 때가 떠오르면서 본전이 생각나고 그런 거다.
가진 거라곤 부지런한 게 전부인 나였는데 이제 슬슬 주니어 티를 벗으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요령을 피우려는 것인지 자꾸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예전 같으면 훨훨 날아다니며 시키기 전에 모든 일을 다 처리해 버렸을 텐데 요즘은 늘쩡하니 버티기 일쑤다.
괜히 딴짓하게 되고, 띵까띵까 농땡이도 피우고 싶고 그렇다.
이렇게 꼰대가 되는가 싶기도 하고, 애매한 중간 위치가 되다 보니 죽도 밥도, 이도 저도 아닌 소여물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또 감정적으로도 너덜너덜해졌는지 선배나 후배나 동기가 별생각 없이 하는 소리가 비수로 와 박히기도 한다.
악마견인 비글을 뛰어넘는 활동량으로 게으름에 대한 항마력이 높던 나에게는 전에 없는 일이어서 새롭다.
요즘은 멍하니 거실에 앉아서 혹은 기자실 의자에 기대서 지난 일을 곱씹는 버릇도 생겼다.
다들 해봐서 알겠지만 지난 일 붙잡고 늘어져 봐야 본인만 피곤하고, 하등 인생에 도움되는 것이 없다.
괜히 진력만 빠지고, 좋은 일의 기쁨은 닳아 옅어지고, 안 좋은 일은 서운함이 짙어지니까 말이다.

오늘은 일하느라 끼니때를 훨씬 지나쳐 점심으로 쏸라펀(酸辣粉)을 먹었다.
화하니 매운 마라(麻辣)맛 쏸라펀을 호호 불며 먹다가 구레나룻을 타고 내리는 땀을 닦으며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내가 본전 생각하지 말고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 갓 20살 무렵 출강을 하던 학원 원장한테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즈음 엄마는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피해의식이 가득해 모든 상황에 쉽게 씩씩대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공부는 잘하면 니가 한 것에 절반 돌아오고, 돈벌이는 잘해야 열개 중 둬개나 돌아온다"
어려서는 흘려듣던 말인데 사회생활하면서는 확실히 무슨 말인지 절절히 느끼게 됐다.
그때부터 본전이라곤 생각한 적 없이 줄기차게 달려왔는데 요새 갑자기 쏟아부은 판돈이 생각난단 말이지.
사실 체력만 받쳐주면야 이런 일이 뭐 대수겠냐만은 이거 자꾸 기력이 빠지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본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소재로 한 영화 '안도 타다오'에서 '체력이 떨어지면 싸울 마음이 사라진다'라는 대사가 나왔다.
정말로 싸울 마음이 사라지니 자꾸 피하게 되고, 남 핑계 대는 일이 잦아진다. 요즘은 하루 중 멍 때리는 시간 대부분을 투덜대는 데 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 글을 끝으로 그만 투덜대고 '내가 하지 뭐' 모드로 돌아가서 시답잖은 본전 타령은 집어치워야겠다.

치열하게 사는 안도 타다오 건축가

#단상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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