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 미슐랭 1스타 상하이 본방 요리 '라오지탕'
중국에서 베이징과 가장 지역감정이 좋지 않은 곳을 꼽으라면 어디일까?
아마도 상하이가 아닐까.
정치 교육 수도라 불리는 베이징과 경제 수도로 불리는 상하이는 오랜 '앙숙' 관계다.
도시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시민들의 성향도 매우 다른 두 도시의 자존심 대결을 보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흥미진진한 일이다.
단편적이지만 베이징과 상하이에 모두 살아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베이징은 좀 거칠고, 상하이는 섬세하다.
그나마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오만방자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는 것.
흔히 상하이 사람은 베이징 사람에게 촌스럽다고 말하고, 베이징 사람은 상하이 사람들에게 돈만 밝힌다고 말한다.
굉장히 도식화한 것이지만 나도 어느 정도 이 주장에 동의한다.
상하이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보다 더 세련된 멋쟁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베이징에서만 지내다 2007년 인턴을 하러 상하이에 갔을 때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베이징에서 버스를 타면 머리를 감은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패션도 한국의 70, 80년대 수준에 머물렀다.
내가 일했던 곳은 상하이 샹그릴라 호텔 근처 상업지구였는데 거리 곳곳이 명품으로 수 놓일 정도로 다들 옷차림이 화려했다.
음식은 어떨까?
베이징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베이징 사람들도 이제는 상하이 못지않은 부를 쌓았다.
여전히 치장하거나 꾸미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막무가내 패션이 길거리를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음식점도 그렇다. 이제는 제법 전국구 맛집들이 들어와 있고,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식당의 분점도 베이징에 지점을 내기도 한다.
상하이와 비교하면 어떨까?
굳이 대결이랄 것도 없는 이 대결은 당연히 상하이의 완승이다.
그 차이는 부의 문제라기보다는 미식에 대한 가치관과 오랜 시간 쌓여온 문화적 토양 때문이다.
상하이에 가본 사람은 알지만, 정말 비싼 맛집이 많다.
간혹 나에게 맛집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실패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비싼 집을 추천해준다.
가격이 음식 맛을 절대적으로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가격에 비례해 식재료의 신선도와 조리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에서 하이엔드급 레스토랑의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이 상하이다.
베이징 사람들이 부유해지자 고급 레스토랑이 하나둘 베이징에 문을 열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말을 거두진 못했다.
이 이유 역시 문화적인 토양에서 연유한다.
예부터 척박한 북방의 중심지이자 이민족 왕조가 많이 들어섰던 베이징은 사실 음식의 질보다 양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궁중 요리가 있고, 여러 지역의 음식이 모여 있지만 이런 문화적 특징은 베이징에서 최고급 레스토랑이 뿌리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쉽게 말하면 상하이 사람은 미식을 위해 한 끼에 100만 원을 치를 용의가 있지만, 베이징 사람은 50만 원이 한계라는 이야기다.
뭐 이런 배경 아래 베이징에서 맛있는 상하이 요리를 먹기란 쉽지 않다.
나도 장쑤 요리를 먹고 싶을 때면 화이양 요릿집에 갔지 상하이 식당을 찾지는 않았다.
또 베이징에서 섬세한 상하이 요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던 것도 상하이 식당을 찾지 않는 이유가 됐다.
어제는 가끔 미식을 함께 먹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하이 요릿집을 가자기에 처음에는 저어했으나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집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베이징 미슐랭이 비리 논란이 있었던 뒤로 그다지 신뢰하지 않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미슐랭 식당들은 기본은 갖춘 곳이 많다.
내심 '거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라오지탕(老吉堂)이란 식당에 도착했다.
겉모양은 딱 동양적 스타일에 서양의 감성이 묻은 상하이풍을 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원래 내실이 없는 사람이 겉치레에 집중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주최자가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뒤 홍샤오러우, 탕추샤오파이(탕추쪽갈비), 게 내장 두부, 말린 병어 훈제, 민물새우튀김, 성젠바오, 찹쌀 꿀대추가 테이블에 올랐다.
책에도 썼지만 나는 상하이 요리보다는 조금 투박하고 전통에 가까운 화이양 요리를 좋아한다.
상하이 요리는 화이양의 한 지류로 본류인 화이양 요리보다 단맛이 좀 더 강해 조금 먹다 보면 느끼한 특징이 있다. 단맛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 상하이 요리보단 화이양 요리가 입맛이 더 맞다.
이 집 요리 역시 단맛이 강했다.
그런데도 신선한 재료와 간을 섬세하게 맞춘 셰프의 솜씨가 눈에 띄었다. 여태껏 베이징에서 가본 상하이 식당 중에서는 가장 괜찮았다.
특히 말린 병어 훈제는 밥도둑의 칭호를 내리기 충분했다. 말린 생선 특유의 감칠맛에 밑을 든든히 받쳐주는 짠맛이 밥과 궁합이 잘 맞았다.
게 내장 두부도 베이징 내 장쑤 식당 중에서는 으뜸이었다. 지금껏 내가 먹었던 게 내장 두부 중 가장 맛이 좋았던 곳은 베이징 화이양푸였다. 게 내장 두부는 식당 입장에서 값이 비싼 게 내장 비율을 최대한 줄이고 전분과 두부로 빈 공간을 커버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맛이 떨어지고 심한 경우 게가 와서 발 한번 담그고 간 것처럼 내장 향만 겨우 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게 내장 두부는 전분 비린 맛이 강하고, 입에 넣었을 때 역한 느낌이 난다. 라오지탕의 게 내장 두부는 색부터 게 내장과 살을 아낌없이 넣은 태가 났다. 밥 위에 얹어 식초를 뿌려 한 입 떠보니 고소한 게 내장의 맛과 두부의 부드러운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을 가득 메웠다.
두꺼운 피의 생만두를 한쪽 면만 튀기듯 구워내는 성젠바오도 기본 이상의 맛을 냈다.
대추씨를 발라내고 꿀에 버무린 찹쌀 반죽을 집어넣어 내는 디저트도 식사를 마무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전체적으로 단맛이 강하긴 했지만, 레드 와인과 함께 먹으니 크게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식당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한국 대사관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이다.
주로 대사관 근처에서 장쑤 요리를 먹을 때는 강남 요릿집인 진산청金山城을 이용했는데 이제는 라오지탕으로 올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