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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6. 2018

<진짜 어른이 된 어른을 만난 것에 대한 단상>

#단상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박산호 지음), '어른은 어떻게 돼'(박철현 지음)
    요즘 어른이란 단어가 자꾸 눈에 띤다. 
    내가 어른이 될 나이가 돼 가는 건지, 아님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내가 아는 한 어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어제 우리 사무실 바로 직전 대장님께서 중국 측이 주최하는 포럼 참석차 베이징에 오셨다.
    지금 1진 선배도 훌륭하시지만, 진짜 이런 분이 우리 선배인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선하시고, 바르신 분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고민해 본다면 가장 롤모델에 가까운 분 아닐까 싶다.
    이 선배는 말투부터 행동, 태도, 삶의 자세까지 어느 하나 모나거나 아래 사람을 깔보시는 것이 없으시다.
    또 입은 무거우신데 무게를 잡거나 말이 아예 없으시진 않다. 그리고 입보다는 지갑을 시원하게 여시는 스타일이다.
    베이징 특파원들은 임기를 마치고 귀임할 때 회사에 상관없이 동료 중 한 명이 송별사를 써 주는데 그때 다른 회사 여자 선배가 썼던 송별사 글귀가 아직도 생각난다.
    '항상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시는 선배, 선배를 생각하면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망울과 겸손하고 매너 있는 태도, 그리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여는 지갑이 생각납니다.'
    자꾸 지갑, 지갑 하니 무슨 돈이 많아 흥청망청하시는 분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나는 이 선배와 함께 1년여 남짓을 지냈다. 우리는 중국의 차량 5부제 때문에 회사 차를 운행하지 못하는 날 항상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나와 1진 선배는 이 선배가 계시는 동안 단 한 번도 택시비를 내 본 적이 없다. 한번은 지금 1진 선배와 내가 택시비를 내려고 했다가 그 온화한 얼굴로 정말 화를 내신 적도 있다.
    어제는 거의 8개월 만에 셋이 재회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부임하신 선배는 귀임하실 때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채 우리 둘을 남겨 두고 떠나시는 것을 정말 안타깝고 미안해 하셨다. 한국에 가신 뒤에도 우리 둘이 김정은 3연방 방중같이 큰 일거리를 만나 전전긍긍할 때면 죄인이라도 된 마냥 메시지를 보내 사무실 상황이 어떤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피셨다.
    우리뿐 아니라 우리 직원들도 회식 때면 영상통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정도로 우리 사무실 전체가 따르던 그런 어른이었다.
    그런 분을 8개월 만에 만났으니 나와 1진 선배는 반가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외부 손님이 낀 1차 자리가 끝나고 그 손님이 떠났을 때 우리는 너무 아쉬워서 한 잔만 더 하자고 선배를 붙잡았다. 손을 내저으시는 선배에게 커피라도 마시자고 사정을 했지만, 선배는 우리가 내일도 일을 해야고 피곤하니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끝끝내 우리의 애원을 뿌리쳤다. 그때 시간이 고작 9시였는데도 말이다.
    이 선배도 우리가 너무 반가웠겠지만, 정말 평소 소신을 지키기 위해 아쉬운 마음을 접으신 것을 나는 잘 안다.
    처음 내가 베이징에 오자마자 우리 회사 임원진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순서대로 돌아가며 베이징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중 몇몇은 우리를 1차 2차 3차 4차 술자리까지 끌고 다니면서 말 그대로 술 고문을 했다.
    당시만 해도 사드 정국이 한창이었고, 6차 핵실험의 고비를 지나 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때였기 때문에 몹시 바쁠 때인데도 출장의 흥에 취한 그들은 그리했다.
    그때 함께 술자리를 돈 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선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뭐 바쁜 애들 붙잡고 저럴까 몰라. 그냥 왔으면 조용히 있다 가지. 정 아쉬우면 호텔 로비로 불러 커피나 한 잔 사주고 금일봉이나 주고 갈 것이지 참."
    사람은 말은 쉽게 뱉어도 그것을 지키기란 정말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어제 이 선배가 이 말을 진짜 지킬까.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자리에 나왔다. 내 일말의 의구심이 부끄러울 정도로 역시는 역시였다.
    어제 오후 4시 30분 하이난발 베이징행 항공편으로 일행과 함께 베이징에 도착한 선배를 우리는 회사 차로 직접 모시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어제 공항에서 일했기 때문에 잠시 공항서 대기하면 큰 수고를 할 것도 없이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선배는 절대로 기다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며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맑고 온화한 선배의 얼굴은 거저 얻어진 게 아녔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삶은 얼굴에 새겨진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오늘 선배의 마지막 일정인 인민대회당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갓이모님의 밥상을 준비해 두고 선배를 모셔 오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셨던 보이차도 1진 선배가 우리 몰래 준비를 해두신 것 같다.
    나는 베이징 특파원계 운전사답게 선배가 일정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부리나케 가서 모셔 올 생각이다. 분명 인민대회당 앞에서 안 가려는 선배와 모시려는 내가 옥신각신 기분 좋은 실랑이를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중에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후배들이 모시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 그리운 그런 어른 말이다.
    선배, 선배 계실 때 매일 함께 LG 쌍둥이빌딩 지하에서 아침 먹던 일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선배 가시고는 그 식당에서 아침을 한 번도 안 먹었지만, 식당 카드는 보증금 환급 안 받고 책상 서랍에 기념으로 잘 간직하고 있어요. 아침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제 고민도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후배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내가 타는 똥차 위험하다고 한국 돌아가셔서 본인 자리 부탁은 안 하시고 우리 사무실 차 바꿔주라고 하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 언행일치 안 해도 좋으니 오늘은 꼭 같이 점심, 저녁 먹어요.
#단상 #진짜어른 #어른다운어른이되자 #어른에게도어른이필요하다 #내장래롤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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