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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6. 2018

인연도 소중히 가꾸는 겁니다

#단상

<인연과 변절, 그리고 상록수 같은 사람에 대한 단상>

    "아. 이제 못 만나는 건가요?"
    최근 나에게 나조차 놀랄 정도로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친한 선배 대신 땜빵으로 나간 라디오 방송의 고정 출연이 확정된 뒤에 몇몇 페친 분들이 장난삼아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다.
    '하하하하. 아니에요.'라고 답을 하면서 왜 그런 질문을 농반진반으로 하셨을까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에 그런 경우가 많으니 노파심에 그러신 것 같다.
    몇 년 전에도 X승X 이라는 영화배우가 뜨더니 친구들과 연을 끊었다는 소리를 그 배우의 한 지인이 예능 프로에 나와 말을 하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크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생각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 사람의 가치관에서 '인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남이 모르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일단, 그런 사람들과는 '인연'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수많은 은인을 만나고, 도움을 받아왔다. 또 작은 인연도 허투루 놓아두는 법이 없이 사람을 사귀어 왔다. 이부분 만큼은 와이프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했지만 말리지 못하는 부분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홀로된 것은 없다'는 말을 나는 항시 되뇌곤 한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은 그 잘난 명성이 하는 것도 아니고, 펜대를 잘 굴리는 손이 하는 것도 아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너와 나, 너와 우리, 그들과 나, 우리와 그들. 이 관계의 얽히고 설힌 모양에서 일의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온다.
    무인도에 오늘 당장 들어가야 하는 데 딱 3가지만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까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1. 외부와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 2. 원피스 만화 세트 3. 절친 중 한 사람을 골랐다.
    내가 백날천날 잘나 봐야 죽을 때 내 곁에 남는 것은 돈도, 명예도, 이름도 아니다. 바로 가족, 친구, 지인들이다.
    나는 인연을 맺으면 아주 길고 오래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살다보니 그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연락이 뜸한 친구들도 있지만, 언제든 연락이 오면 너무나 반갑게 맞는다. 뭐 가식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좀 소원해졌을 뿐이지 그 시절 동고동락하던 추억은 고스란히 내 맘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봉충이 된 뒤로 150명 정도이던 내 페친 수가 어느새 1000명에 육박한다. 1000명 이상은 내 둔탁한 머리로는 제대로 소통하고,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더는 친구를 맺지 않을 작정이다. 이 1000명의 페친들은 이제 내 오랜 인연이 될 사람들이다.
    내가 우울감에 허우적거릴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한 사람들이 이들 아닌가.
    어제 라디오 방송을 하기 전에 정말 진심 어린 응원을 받으면서 나의 핵인싸 페친인 누리님의 글이 떠올랐다. 누리님이 올린 글을 갈무리해 소개하자면 '타지에서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이런 페친들이 있었더라면 위기를 더 슬기롭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겼던 힘든 일들은 사실 내가 휘두른 주먹에 산산이 부서져 흩날려진 것이 아니라 내 등 뒤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울감의 근원이 어디인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전혀 감이 안 잡히지만, 매번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마음에 굳은살이 배겨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인제야 한 번에 밀려온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끔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페북에 들어와 따순 사람들을 찾고 위로를 받는다.
    밝은 아이, 잘 웃는 사람, 헤헤보이, 존사람, 사실상 가장. 내가 짊어지고 온 타이틀. 그런 구렁텅이를 지나면서 이런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는 것도 어찌 보면 대견하기도 한데 반대로 약간 사이코패스 같기도 해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온정신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온 것은 주변에 항시 좋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무실 선배들이 그렇고, 베이징 특파원단 선배들도 그렇고, 페친들도 그렇다.
    아무튼 나는 내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천만금을 얻고, 명성을 얻는다고 해도 그런 것이 내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큼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에 저런 것들이 클지 몰라도 나는 확실히 아니다. 의외로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에 '것 같다', '생각이 든다', '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잘 쓰는 나지만, 이것만큼은 확정적으로 '아니다'라고 쓸 수 있다.
    이 세상엔 홀로된 것이 없다. 또 사람의 높고 낮음도 없다.
    기자를 하면서 기업 총수부터 서울역 앞 노숙인까지 다 만나 봤지만, 사람 중에 좋고 나쁨은 있을 수 있지만, 높고 낮은 것은 없다.
    누구라도 내가 만약 변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길에서 혹시 나를 마주치거든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려 주길 바란다.
    헤헤호호 정신줄을 놓고 살다가 갑자기 별이 보이면 '아, 내가 변했구나'하고 정신을 바짝 차릴 테니까.
    그래야 상록수같이 다시 원래의 푸루댕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오늘도 잡설이 길었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우리 오래오래 갑시다. 세상사 뭐 별거 있나요? 다 거기서 거기지'
#단상 #인연 #오래가는건전지 #저들에푸르른 #결정적인순간에배신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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