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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3. 2018

아직 가벼워 지지 못한 나...깃털처럼 가벼워지자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쿤데라


<아직 멀은 가벼워 지지 못한 나에 대한 단상>

'还差得远呢’
아직 멀었다.는 중국어다.
매일 세상 다 살아 본 사람처럼 글을 써대고 있지만, 그래 봐야 37살. 아직 먼 것이다.
신이 났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신이 나자 또 그 앞만 보고 가는 못된 버릇이 나왔다.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그리 살아오다 보니 생긴 버릇인가보다.
아내는 가끔 내가 잡아내지 못한 나의 못된 모습을 일깨워 준다. 그중 지금 떠오르는 말이 딱 하나 있다.
'오빠는 자기가 이만큼 했다고 생각하면, 그 절반 정도는 남한테 그냥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야'
당시에는 이 사람이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골똘히 생각해봐도 모르겠더니 이제는 알겠다. 내가 만 21살도 안 됐을 때부터 봐 온 사람이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거다.
선문답 같은 소린 집어치우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항상 약자로 살아오고, 고군분투하며 살아오다 보니 그냥 사람들이 이 정도는 봐주겠거니 하는 경향이 몸에 밴 거다. 실제로도 많은 분이 나한테 호의적이었고, 어여뻐해줬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응석받이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거나 신세를 지는 것은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편의를 봐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못된 버릇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오래 준비하고,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이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던터라 입 밖으로 선뜻 꺼내지 못하고 고심에 고심을 더했던 일이었다. 이제는 됐지 싶었고, 오랫동안 담아뒀던 마음을 옮겨 적어 프로포절을 드렸다. 하지만 내 감정만 고심에 고심을 더했지 받는 쪽이 어떤지는 살피지 못했다. 역시 앞만 본 것이고, 그리해도 으레 받아 줄 것이란 기대를 마음 가득 품었던 거다.
나중에 그분의 상황을 알고는 정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겪었던 아픔 속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행동에 나서기 전 한번은 상황을 살폈어야 했던 것 아닌가. 마지막 한 수를 잘못 둬서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 아닌가. 이제는 배려받는 사람일 필요가 없을 텐데 그 못된 버르장머리가 또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거다. 
억누르자. 
정신을 바짝 차리자. 마음이 붕 뜰 때 무거운 추를 둬 서너 개 더 달아놓자. 발을 땅에 디뎌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몸이 뜨려고 하면 그물을 쳐서 붙잡아 꽁꽁 싸매자.
다시 처음부터다.
내가 했던 각오와 열정, 수고는 남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보기엔 다 똑같은 사람과 사람이고, 세상 속에 있는 흔한 사람일 뿐이다. 나를 특별한 눈으로 봐줄 것이란 기대를 내려놓자. 놓고, 놓고 또 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교만한 마음을 아예 훌훌 털어버리자.
앞만 보지 말자. 옆에도 보자. 내 뒤도 보고, 상대의 뒤도 보자. 가려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안 보려고 하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집중하고, 자세히, 가만히, 고요하게, 때론 깊게 응시하자.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거칠 것이 없도록 무례함의 반경을 줄여보자. 그런 다음에나 까불어보자. 더 작아지고 가벼워지자. 작아지고 가벼워져서 살랑이는 바람에도 부딪힘이 없도록 하자.
못할 것 없다. 아직 37살이다. 시간은 많다. 각오가 부족할뿐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이루기에도, 망하기에도.
#단상 #상대의자리에서나를보자 #직진만하면평양까지간다 #멈추고돌아보고멈추고옆을보고 #대상만보지말고배경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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