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7. 2018

나는 그래서 테니스를 친다...방망이깍는 노인처럼

#단상



    <내가 테니스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단상>

     나는 승부욕이 진짜 없다.
    그래서 테니스를 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테니스는 승부욕이 없이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스포츠다.
    테니스에 관해서는 나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치는 것도 좋아한다.
    테니스는 배우기가 매우 어렵지만,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지만 테니스는 정말 하나의 샷을 익히기 위해서는 수천수만 번 라켓을 휘둘러야 겨우 감을 잡을 정도로 예민한 운동이다.
    특히 리듬감과 스텝이 중요한데 나 같이 음치기 박치기한 사람은 더더욱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테니스가 좋다.
    세상에 쉬운 운동이 없겠지만, 특히 무지하게 어렵고 배우기 힘든 테니스를 하면서 수행하는 마음이랄까.
    물론 엄청 재밌기 때문에 라켓을 드는 것이지 어려운 운동을 정복하겠다는 오기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운동 역정을 돌아보면서 묘한 공통점이 있다.
    어려선 유도를 했고, 대학 땐 테니스, 그 다음엔 등산, 그 다음엔 배드민턴, 그 다음엔 자전거, 지금은 다시 테니스.
    뭔가 의도한 것은 아니고, 아빠가 처음 데려간 유도 도장을 빼곤 그때그때 기분대로 선택한 운동들인데 묘하게 여럿이 함께하는 운동이 없다.
    아마도 세 가지 정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먼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무의식의 작용이다.
    테니스나 배드민턴, 자전차, 등산은 기본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테니스와 배드민턴은 물론 복식이 있지만, 다른 단체 운동보다는 마음에 맞는 파트너 한 명만 구하면 되기 때문에 단체 운동적 요소가 적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에러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 되고, 자잘못의 구분도 명확하다.
    또 대부분 그 피해가 나와 파트너 두 사람에게만 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달까.
    다음은 사회생활에서 오는 피로를 취미에서는 피하고 싶기 때문인 거 같다.
    유달리 사람을 많이 만나고 부대끼는 기자 일을 해서 그런지 취미에서만큼은 사람이 여럿인 운동보다는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기는 것 같다.
    네트가 가운데 쳐져 있는 운동들의 특징은 상대가 나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명확한 영역의 구분, 자기 영역의 확보, 공간적 무결성 등은 내가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넓은 의미에서 자전거나 등산도 결국은 나 혼자와의 싸움이니 네트는 없지만, 비슷하게 네트를 몸에 둘둘 만 것처럼 자기만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혼자 하는 운동의 특징은 내가 갈고 닦은 것을 시험해보고, 조금씩 수정해 가는 묘미가 있다.
    여럿이 하는 축구나 야구를 보면 패배의 원인에 대해 감독 잘못이다. 7회에 투수 교체 타이밍을 놓쳤다. 패스워크는 좋은데 골 결정력이 문제다. 등등 여러 패배 요인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온다.
    그러나 자기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고, 플레이어가 하나 또는 둘인 내가 좋아하는 운동들은 대부분 패배, 실패 원인이 분명하다.
    그냥 다 내 잘못이다.
    그래서 끝없는 좌절감에 빠지게 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다음엔 요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해서 다시 한 번 저 상대와 혹은 이 코스에 도전해 봐야지 하는 도전의식이 생긴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수백, 수천 번 완벽한 방망이를 위해 매음새를 다듬듯이 내 몸을 움직이는 조작능력과 동작의 완결성을 목표로 나도 라켓을 휘두른다.
    그래, 테니스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차라리 나를 조금 더 예리하게 갈고 닦는 하나의 수행이라 부르는 게 맞다.
    그래서 나는 테니스를 친다.
    라고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테니스를 치러 나가는 것에 대해 반성문을 쓰라길래 새벽녘에 적어두고 나가 여보.
    니가 잠든 머리맡에 이 편지를 두고 가려니 옛날 연애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는 사랑을 속삭였는데 요즘은 만날 반성의 말들을 적는구나.
    금방 올게. 이제 늦을 거 같으니 줄인다.
#단상 #테니스 #혼자하는운동 #수행이야이건 #반성반성을해보자 #오랜만에쓴편지
++짤은 나의 최애 캐릭 <테니스의 왕자> 근성의 카이도. '스네이크 샷~~~~~~~~~~~!!!'

이전 24화 티키타카 하는 세상살이는 두배로 행복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