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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04. 2018

친구가 날 찾아온 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다

#단상 #해외살이 #에세이

<손님맞이를 하는 강아지 같은 나에 대한 단상>


    '손님이 오면 집을 홀로 지키던 시골 개가 주인을 본 것 마냥 미친 듯이 반갑다'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그리움을 안고 산다. 나도 비행기 타면 한국까지 서울서 부산 거리보다 가까운 베이징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저기 남태평양 피지에 사는 교민 만큼이나 그리운 마음이 크다.

    실제로 1년에 한국에 많이 가봐야 1, 2번 정도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 누가 한국에서 찾아온다고 하면 그 사람이 3대에 걸친 원수라도 시내 오일장에 갔다 돌아오는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꼬리를 팔래팔래 흔드는 꼬락서니가 된다. 그 정도가 의외의 격한 환영을 받는 상대방이 '흠칫'할만큼 과하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주재원이나 장기 체류하는 교민들 태반이 그러하다.

    이 반가움의 크기가 얼만큼인지 짐작이 안 갈 거 같아 설명하자면, 여행을 오는 사람의 몇 배는 된다.

    해외여행을 나가는 사람의 들뜬 기분은 해외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분이 어느 정도나 흥분되는 것인지 보려면 공항 면세점 매출을 보는 것이 좋다. 공항 면세점의 매출은 일반 매장의 서너 배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여행객들의 흥분 상태는 충동적인 소비로 이어진다. 마치 지름신이 이성을 마비시킨 것처럼 충동구매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흥분된 손님을 맞는 쪽은 어떠한가. 해외여행에 신이 난 사람마저 흠칫할 정도라니 가히 그리움만으로 채워진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라 해도 될 만큼 반가움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수치로 대충 따져보면 여행객이 평정심 상태의 일반인보다 3~4배 업이 된 상태인데 이보다 두 배 정도 더 신명이 난 상태니 손님을 맞는 해외 생활자는 일반인보다는 6∼8배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공항에서 지름신을 접신한 것과 같다고 한다면, 이 그리움 덩어리는 신이 내린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신이 강림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뭐든 해주고 싶고, 뭐든 챙겨서 보내고 싶고, 부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맥시멈으로 당겨서 오지랖도 떠는 것일 테다. 

    이런 감정은 잘 조절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런 과도한 흥분 상태가 자칫 상대에게 부담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길 원하는 여행자의 경우, 이런 감정 과잉 상태가 굉장히 거북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둘의 관계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가움을 표할 때도 감정 컨트롤이 중요하다. 내가 반가움을 표현하는데 있어 바로미터로 삼는 것은 첫 만남 순간 이뤄지는 '스킨십'이다. 아니 무슨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스킨십으로 그걸 측정한다고? 변태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만의 노하우라고 해두자.

    공항에서 베이징을 찾은 상대를 만나면 한 30m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눈이 마주치게 돼 있다. 이때 나와 상대 모두 '첫 도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거리를 걷는 10여 초간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내 경우는 대게 상대의 표정을 살펴보며 반가움의 방출량을 정하게 된다. 이쪽이야 이미 현신의 단계이기 때문에 이미 오픈 마인드이고, 스킨십의 강도는 오는 쪽 그러니까 베이징에 찾아오는 쪽에 달려 있다.

    드디어 조우의 순간. 

    만약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악수를 하면 여행일정 동안 적당히 시내 투어라든지 발 마사지 같은 것을 예약해주고, 한두 번 저녁 식사 자리에 나가 맛있는 밥을 사주는 정도가 좋다.

    악수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서로 마주 보고 두 손을 맞잡으며 '그랬어? 어쨌어?'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면, 전체 일정 중 30% 정도는 동행하고, 대부분의 식사를 같이하고, 돌아갈 때 공항에 배웅을 나가는 정도면 된다.

    이보다 강도가 조금 더 센 '포옹 단계'까지 가면 회사에 연차를 내고 일정 대부분을 함께 즐기고, 옆에서 가이드처럼 설명도 해주는 감정 과잉 서비스를 제공해도 좋다. 또 매일 저녁을 함께하며 중국의 음식문화에 관해서 설명도 해주고, 시진핑 주석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13도 정도 기울었다는 둥 내가 겪었던 재미있는 취재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면 딱 적당한 선을 지킨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단계다. 이 단계는 공항에서 만나 포옹을 했을 때 서로 꽈~악 부둥켜안고, '그랬어? 어쨌어?'라는 말도 없이 3~5초 정도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다. 서로 말이 오갈 필요도 없이 포옹 하나만으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고, 먼 곳까지 나를 보러 와줬다는 감사의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때는 빠구 없이 모든 일정을 풀로 수행하며 조잘재잘 같이 떠들고, 서로의 신변 변화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우리 집에 초대해 차라도 한 잔 대접하는 것이다.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 바로 그런 상태. 서로가 그리움이란 먹구름을 일소에 해소해 버리고, 약에 취한 듯 땅에서 발이 15㎝ 정도 떠다니는 기분인 그런 상태를 오롯이 느끼면 되는 것이다. 마치 목포 아빠 집에 있는 풍산개 강풍이가 장에 갔다 온 아빠를 보고 개집이 뽑힐 정도로 격하게 아빠를 맞는 것처럼 말이다.

    타향살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들어본 이야기가 있다.

    '외국 살면 다 효자고, 의리있는 친구고, 애국자고, 원수도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는 지저스가 된다'

    누가 죽도록 밉거나, 친했던 친구가 이유 없이 미워진다면, 그 친구가 '나'라는 외딴 섬나라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뚝 떨어지던 정나미가 딱하니 다시 올라붙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단상 #손님맞이 #반가움 #왈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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