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8
퇴사를 하고 2주가 흘렀습니다. 꽤 빠르게 흘렀습니다.
퇴사 이후에 내가 대단히 시간을 잘 써서 굉장히 알찬 휴식을 할 거란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 자신을 알기에.. (풋) 때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나 스스로의 고삐를 조금 늦추어 줄 때가 아닌가 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생각은 있었어요. 퇴사를 하면 내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지 하던 것들. 적고 보니 크게 3 가지 네요.
아이를 돌보아야 하므로, 대단한 일탈은 꿈꾸지 못했고 대부분 일상 속에서의 실천입니다. 사실, 지친 직장인들은 대부분 거창한 '세계일주'가 아니라 '마음 편한 평일 오후의 산책' 같은 치유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책방과 서점을 두루 가고, 도서관도 다니며 책을 많이 읽으리.
그리고 그 기록을 인스타그램에 남기며 '북스타그래머'가 되리.
그래서 무식이 좀 탈피하고, 그간 좀 먹었던 나의 정신 건강에 아주 좋은 비료를 많이 주리.
일부 성공하고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나진 않지만 인스타계정 @the_calm_moment에 읽은 책들을 조금씩 기억에 남는 문구들과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스스로의 독서 노트가 돼서 꽤 좋은 것 같습니다. 카페를 갈 때면 의례 읽을 책, 사진 찍을 책 등을 한 두 개씩 챙겨가고, 이미 다 읽었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지 않아 올리지 못한 책들도 있네요. Yes24 서평 이벤트에 응모해! 책을 받는 소확행 이벤트도 있었습니다. ^^V
무얼 하건, 쉴 때 체력을 많이 길러놔야겠다는 굳은 생각이 있었죠.
요건 아직 제대로 시작을 못한 것 같습니다. 먹는 양이 많지 않아 늘 다소 빌빌 거리는 체력의 소유자지만, 개인 PT 후 체력 강화의 경험이 있었던 지라 꼭 헬스장을 등록해야지.. 했는데 막상 벌이가 없고 나니, 필라테스 월 24만 원이 부담스러워지더군요.
날씨 탓도 있습니다. 저는 양재천 3분 거리에 사는데, 딱 제가 회사를 안 가는 그 주간부터 미세먼지가 없는 봄 날씨가 찾아와 주어 아침마다 양재천 산책 혹은 조깅을 하며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와 출산, 컴퓨터 앞에서 굽은 등, 골프로 인해 상한 허리 등 비루한 몸 덩어리는 조깅도 힘들더군요. 그래도 평일 오전의 산책은 정말 달콤하더이다♡
그간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아왔었고,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에 쏟는 에너지 그리고 7살 된 아이와 아이로 인한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에 쏟는 에너지만으로도 벅찼으므로, 다른 사람들 - 이를 테면 오랜 고향 친구, 전전 직장 동료, 대학 친구, 고마웠던 선생님 등등 - 에게는 늘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었죠.
그래서 저녁은 어렵지만, 아이가 유치원 가 있는 시간 동안 그들이 있는 곳으로 출동해 '점심 한 끼'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막상 2주를 지내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어요.
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일만 하면 되었던 '직장인'이 아닌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워킹'을 지우더라도 '맘'이 남기 때문이에요. 거기다 가정 주부로서의 일도 어마무시 ㅋㅋ 했습니다. (ㅠ_ㅠ)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아이가 오기까지 7시간 남짓한 시간이 제게 있습니다. 길게 보면 길지만, 점심 약속을 한번 잡고 나면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 앞 뒤로 있는 2 시간여의 자투리 시간에 외출 준비, 집안일 등 조각난 일들을 해야 했습니다.
왜 바닥의 먼지는 이렇게 많이 보이고, 정리되지 않은 침대는 거슬리며, 빨래가 쌓이는 게 눈치가 보일까요. 그렇게 집안일들에 나를 소모하고 나면 체력은 체력대로 소진되고, 시간은 금세 흘러버립니다. 내가 집에 있으니 뭐라도 먹을라 치면 설거지를 해야 하죠. 아이가 온 이후로는 잠자기 전까지 온전히 활동 시간이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두기도 해야 했습니다.
출근을 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고, 남편에게 빨래 도움을 받던 것이 이제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면서 7시간의 자유 시간은 사실 온전한 자유 시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저 같은 성격의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라면요. (그래서 책 #여자는왜완벽하려고애쓸까 를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나니, 시간을 조금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핸드폰을 조금 더 내려놓고, 청소기는 하루 정도는 조금 건너뛰어야겠습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시간 내어 전철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일주일에 서점을 한 번씩은 가야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이렇게 빠듯한 7시간을 오롯이 내가 채워갈 수 있다는 기쁨을 한 껏 느끼는 중입니다. '한두 달만 지나도 몸이 근질근질할 거다'라고 했는데, 이러다 정말 무직으로 계속 살게 되면 어쩌나요?
사실, 한 이틀 정도 텀으로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이대로 쭉 조금 더 몇 달 쉬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며칠 지속되다가, 무한 재생 티 안 나는 집안일에 지칠 때면 나의 에너지를 조금 더 생산적인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기도 합니다.
어쨌건, 조금 더 지내보겠습니다. ^^
이 글을 보는 분들의 일상은 어떤가요, 회사를 그만두면 내 일상을 어떻게 채우고 싶으세요?
#퇴사 #워킹맘 #퇴사했습니다 #백수생활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