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산타클로스가 집으로 찾아왔다.
by 경험만랩 N잡러 완전쏘중 Dec 25. 2021
띠링, 띠링.
연달아 오는 두 번의 문자 소리였다.
밤새 잠을 설쳤는데 문자 소리에 기민하게 몸이 반응했다.
어젯밤에 첫째 아이의 PCR 검사 결과는 음성이라 안도 아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와 둘째의 PCR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의 결과를 받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보건소에서 센스 있게 아침 일찍 결과를 보내준 것이다. 둘째 아이와 나도 음성이라는 결과였다. 음성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선생님과 지인들에게 결과를 보냈다. 나로 인해 혹시 피해자가 더 생겼을까 봐 조마조마한 하루였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순간 다른 친구들의 결과가 걱정이 되었다.
음성이라는 문자를 보면서, 자면서도 썼던 답답한 마스크를 잠시나마 내려놓았다. 생각해보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환기하고 나서 다시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음성이라는 결과만으로도 돌덩이 같은 마음의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
음성이긴 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조치였다. 어쩌면 참 날짜도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잘 잡았을까?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자가격리를 시작하여 1월 1일 첫날 자가격리가 해제된다. 물론 자가격리기간 동안 음성이 나와야 하는 전제조건이다. 크리스마스, 연말, 신정 연말 연휴의 모든 일정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학교에 너무 미안했다.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꿈끼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준비한 아이들 공연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아이들이 노력한 그 시간들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그 발표회를 위해 노력해주신 선생님들 역시도 얼마나 서운하고 아쉬울까 생각하니 가슴 언저리가 따끔거렸다.
신랑도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신정까지 온전히 혼자 보내야 했다. 주말부부로 지내니 그나마 이런 연휴가 나름 가족들이 온전히 즐기고 만나는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 빼앗긴 것 같다.(남편은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
막상 자가격리가 시작되니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눈까지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이렇게 한탄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려고 해도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차를 타고 와달라고 하긴 어렵고, 더구나 이곳 강원도에서는 눈 오는 날은 나오지도 않는 게 일반적이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많이 춥다고 하는데 히터의 등유까지 때마침 배고프다고 알람 소리를 한다. 히터를 켤 수 없다는 사실은 공포스러웠다. -26도까지 내려간다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한 마음이다.
음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감사할 일이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참 자가격리 기간도 원망스럽고 눈이 정말 펑펑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마저 못마땅했다. 아이들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연말의 기쁨과 눈싸움과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즐거움을 답답하게 집안에서만 보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어제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낸지라 오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운동도 루틴도 일상도 그냥 아이들 케어하고 나도 좀 챙기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도, 쓰고 싶은 글도, 운동도 오늘은 올스탑이다. 루틴이고 뭐고 당장 내가 아프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니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케이크도 장식도 없다. 다행히 유튜브엔 캐럴송이 넘쳐났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음성이었고, 주변의 지인들 모두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아이들과 나름 크리스마스의 기분을 느끼는데 집 밖이 어수선하다. 눈앞에 산타클로스가 오셨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학교에서 선물이 한 보따리 왔다. 일 년 동안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온전히 담은 앨범, 아이들이 자가격리 기간 동안 볼만한 책 꾸러미와 학교에 놓고 간 아이들의 교과서, 그리고 같은 학교의 학부모님의 과자 선물, 방학에 주시는 우유 한 박스였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산타클로스 선생님.
며칠 동안 고단했던 마음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담임선생님은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셨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면서 아이들을 향해서 손 흔들어주시고 하트를 날려주시는 선생님들 때문에 왈칵 참았던 눈물이 엉엉 쏟아졌다. 아이들은 그저 선물과 과자 보따리에 신이 났는데 나는 바보처럼 펑펑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작은 학교라서 가능한 일이고, 인원이 너무 적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고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집안에 갇혀 지낼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마음 써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사실 코로나 확진 밀접 접촉자라는 사실을 학교에 알렸을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은 그저 감기 같은 바이 러스니 전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가질 일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그저 그 말로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브에 찾아오신 선생님은 진짜 산타클로스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아이들마저 선생님인걸 알았지만 존재와 등장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자가격리 첫날, 감동의 도가니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