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자가격리

24일 늦은 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음성이지만 코로나 기간 내에 양성이 되면 어쩌지 같은 쓸데없는 불안감이다. 집안에 있는 모든 약상자를 꺼내서 그간 먹지 않았던 영양제들을 챙겼다. 자가격리기간 동안은 면역력을 좀 더 키워줄 수 있는 영양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우울감이 급 밀려오는 저녁이었다.


생각해보니 내일이 크리스마스다. 아직 선물 포장도 못했고, 카드도 못썼고 산타할아버지 맞을 준비도(?) 못하고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산타 할아버지 오는 시간을 기대하고 어떻게든 산타를 보고 자려고 잠을 미뤘을 텐데 자가격리라는 환경에서 엄마의 예민함을 알아챘는지...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우고 살포시 일어났다. 다행히도 자가격리 전에 선물은 도착했고 이미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도 받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세팅만 하면 되었는데 선물을 포장하려고 보니 선물 포장지가 없다. 준비할 수 있는 선에서 크래프트지로 포장을 하고 리본을 찾아온 집안을 다 뒤졌다. 겨우 겨우 작은 리본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이었다.

선물을 포장하기 시작하니 괜히 내가 신이 났다. 자가격리한다고 크리스마스를 누리지 못하면 안 되지! 2021년 크리스마스는 오늘 하루뿐이잖아!! 노는 것에 늘 진심인 나의 뽀로로 기질이 다시 발동하는 듯했다.

아이들이 아프지도 않고, 나도 증상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 슬금슬금 크리스마스가 느껴졌다. 캐럴을 틀고 산타 앱도 찾아보았다. 아이들에게 새벽에 산타 할아버지 만난 스토리도 만들어 줘야지^^


아침에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 아이들이 먼저 거실에 나왔다가 산타의 선물과 흔적을 보고 난리가 났다. 산타는 왜 그냥 갔냐길래 자가격리 기간인데 어떻게 만나냐? 했더니 애들이 바로 수긍!! ㅋㅋㅋ 요게 자가격리의 장점이네 ㅋㅋㅋ


아이들이 별자리 수업 갔다가 포인터 보고 뿅 가서 하늘까지 뻗어나가는 포인터를 꼭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 했다. 산타할아버지 직통 우체국에 편지를 열심히 썼었는데 소원이 이뤄졌다면서 신이 났다. 아침부터 왁자지껄하다. 밖에는 하얀 눈이 가득!!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번에 엄마와 아빠 선물은 레고. 자가격리 기간에 딱 맞는 찰떡 선물이었던 듯~ 10일간 레고 작품 100개쯤 만들 것 같다.

나름 아이들과의 질서가 잡혀 갈 것 같긴 하지만 아이들이 하루 천 번쯤 부르는 건 아직 적응이 안 된다. 돌 밥(돌아서면 밥)과 간식까지 하면 주방에서 떨어질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이번 주까지는 다른 생각도 일도 고민도 없이 그냥 머리를 좀 텅 비워야겠다. 어쩌면 내년을 위해 준비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도 이 기간에 만들어야겠다. 내년 연말엔 자가격리했던 시간을 또 추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인이 톡방에 올려주신 태양의 서커스를 아이들과 저녁 만찬에 함께 관람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땐 공연 보러 갈 수가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 또 아이들이랑 공연 다닐만하니 코로나로 다중 시설 이용이 꺼려졌다. 크리스마스에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데 내년쯤엔 아이들과 함께 공연장에서 이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킷리스트에 적어 놓을까보다.


아직도 머리가 멍하긴 하지만 이럴 때도 있지 싶다. 눈이 펑펑 온 마당을 바라보니 마음이 안정된다. 정말 화이트 크리스마스구나. 메리 크리스마스 자가격리! 남은 기간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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