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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Apr 07. 2021

돈과 상처

아빠 일기장을 몰래 읽었습니다

매번 밥상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 철학을 주구장창 이야기하던 아빠. 아빠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돈’이다. 매번 돈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빠가 이야기 해주는 레파토리는 항상 같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카센터를 운영하며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이 항상 집에 상주해 있었다고 할 정도이니, 그 옛날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돈을 제대로 쓸 줄도 몰랐고, 모을 줄도 몰랐다. 그러자 좋은 시절도 금방 끝났다. 할아버지의 가게는 쫄딱 망해버렸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졌다.      


살아 가는데 있어서 고독함을 느낀다

Money가 무엇인지 

결국 그것 때문에 사람들끼리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질 않는가

-1972.3.24.-      


당시, 아빠는 학교에 등록금을 가져가지 못해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반 친구들에게도 창피를 당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대학도 결국 포기했다. 이런 기억이 30년이 넘도록 가슴에 사무칠 정도면, 그때 아빠가 받았던 상처가 정말 컸구나 싶다. 아마 그래서 안정적인 밥벌이에 대한 욕구가 컸을 거다. ‘내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는 생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택했고, 그게 공무원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웬만해선 밥줄이 끊길 일은 없는 직업. 지금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볼 정도로 위상이 대단하지만, 아빠가 시험을 보고 임용이 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엄마와 결혼할 때도 아빠가 가난한 공무원이라서 반대가 심했다고 하니까.


그러니 ‘돈’에 대한 아빠의 감정은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아마 더 복잡할거다. 아빠의 인생에서 상처로 남았던 일은 다 ‘돈’과 연결되어있다.


원래 아빠에겐 형이 있었다. 친형으로 알고 살았던 형이 하루 아침에 남이 되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형 역시 대학진학을 포기할 때쯤, 형을 버리고 갔던 친엄마가 나타났다. 등록금을 지원해주겠다는 말에 형은 길러준 부모를 버리고 친엄마를 따라 집을 나갔다. 이때,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루아침에 친형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 형이 가족을 버리고 엄마에게 갔을 때. 배신감과 돈에 대한 원망 이 섞여 괴로운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까. 아빠는 이 이야기 역시 정말 여러 번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사람답게, 사람 구실을 하고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늘 악착같이 일했다. 공무원이 된 후에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며 휴일에도 일한 적이 수두룩했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자신을 독하게 채찍질 하며 살았지만 인정엔 약했다. 아픈 몸 때문에 더 이상 일하지 못하고 퇴직한후,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오래된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는 아빠는 퇴직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빌려주었다. 아빠의 제일 오래되고 가까운 친구였는데, 점점 연락이 뜸해지더니 결국 소식이 끊겼다.      


“돈을 갚을 수 없으니까 미안해서 연락을 못하는 거겠지”     

 

아빠는 씁쓸하게 말을 뱉었다. 원망이나 미움보다는, 친구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큰듯했다. 그러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돈 빌리지 않도록, 번 돈을 잘 모으고 허튼 곳에 돈 쓰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사실 나는 아빠처럼 돈에 대한 큰 상처나 서러움은 없다. 기껏해야, 갖고 싶은 걸 맘대로 사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비싼 음식점 앞에서 고민하는 정도의 사사로운 일들이다. 아빠와는 다르게 돈에 사무친 기억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건, 아빠가 이뤄 놓은 기본값 덕분이다. 알뜰 살뜰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내 부모 덕분이라는 걸 안다. 그저, 자식들 밥 굶지 않게 살고, 배우고 싶은 것을 돈 걱정 없이 배우게 하는 것이 목표였던 삶. 아빠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기에, 나는 그 앞을 출발선 삼아 시작할 수 있었던 거니까. 


아빠는 지금도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아빠 노후는 걱정하지 말고, 너희만 신경 쓰면 돼. 너네 앞가림만 잘 하면 된다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안심이 되다가도 미안하기도 하다. 아빠는 자신이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부지런히 돈을 아끼고 모아둔다. 



아빠의 오래된 일기장 속 한 구절 





*책 <아빠 일기장을 몰래 읽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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