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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Apr 10. 2021

아빠의 문자

아빠 일기장을 몰래 읽었습니다

1.     

오빠가 취직해서 독립한 이후 아빠는 오빠에게 문자를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오빠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으니 문자로 하고 싶은 말을 보내기 시작한 거다.      




아빠는 오빠가 막상 집에 와도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지만, 집에 올 때마다 운동은 잘 하고 있는지 체크하곤 했다. 오랜만에 본 오빠가 집에 있을 때보다 살이 좀 찐 듯하니 아빠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닮아서 뚱뚱해질까 봐 걱정한 건가? 

아빠의 경고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2. 


아빠의 일상에서 매일 빠지지 않는 습관 중 하나가 영어공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빠에게는 여가 시간을 채울 일이 필요했다. 몸이 불편한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서 EBS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아빠의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 그러다 오빠는 아빠의 때아닌 문자 폭격을 받는데…….




막상 집에 와도 별로 이야기도 많이 하지 않으면서 꼭 이렇게 2주일에 와야 하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오빠가 오기만을 바라는 아빠의 짝사랑은 계속된다. 

참, 아빠의 메시지를 읽다 보면 저절로 영어공부가 된답니다. 오빠도 센스가 부족하네. 이럴 때는 yes라고 답해줘야지! 




3. 

아빠는 오빠가 33살이 넘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결혼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오빠가 집에 올 때마다 만나는 사람은 있냐, 결혼은 안 할 거냐 묻는 게 일상이었다. 맨 처음엔 웃으며 대답해주던 오빠가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성을 내니, 아빠는 이렇게 외쳤다. “너!!! 그렇게 혼자 살다가 독거노인으로 늙어 죽을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아빠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EBS 교육방송을 시청하며 영어를 공부했다. 그날 오후, 오빠는 이런 문자를 받게 된다.      





4. 

때때로 별것 아닌 이유로 아빠와 심각한 말싸움으로 번질 때가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맞지 않거나, 서로의 사소한 짜증을 넘기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때 그렇다. 이날도 그랬다. 별것 아닌 아빠의 짜증을 내가 넘기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버렸다. 아빠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는 냉전이 시작되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데 아빠한테서 온 카톡.      





카톡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났지만, 괜히 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빠에게 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소심한 복수. 하지만 이날 집에 가서 저녁은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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