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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l 14. 2021

응급실에서 보낸 16시간(2)

아침 8시쯤 황망한 얼굴의 엄마가 도착했다. 그냥 검사만 받으러 온 거라고, 입원도 기관지 내시경 검사 때문에 한 거라며 엄마를 안심시키려 했다. 곧이어 닥터K처럼 냉정해 보이는 남자 간호조무사가 나타나 내 이동식 침대를 응급실 밖으로 밀고 나갔다. 난 걸어갈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누워서 가야하는 건가? 침대에 실려가는 나를 엄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따라온다. 침대에 누워 이동하며 외래환자들과 병원 풍경을 이리저리 살핀다. 정황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정말 아픈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마침 나는 야위고 몰골이 지저분해 병원의 장기투병환자처럼 보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메디칼 드라마의 엑스트라 역할에 나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기관지 내시경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주로 60-70대 어르신들이었다. 폐가 나쁜 환자들의 날카로운 기침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내 왼편 침대 발치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있었다. 머리칼이 빠져 이마와 정수리가 훤했다. 뒷머리의 흰 머리카락마저 숱이 얼마 없다. 골격이 크지만 몸은 사막지대의 나무처럼 비쩍 말랐다. 코에 호스를 연결한 채 한 숨, 한 숨 힘겹게 숨을 쉰다. 초점 없는 눈은 어디도 보고 있지 않다. 표정 없는 얼굴, 그저 살아있기 위해 생의 무게를 견디는 얼굴이다. 나도 언젠가 삶이 버거울 때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과거의 내 얼굴, 미래의 내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간호사가 준 물파스 향의 마취약을 꿀꺽 삼키자 이내 혀와 목구멍의 감각이 둔해진다. 혀가 입 안에 있는 물건처럼 느껴진다. 끈적해진 침이 내 뜻대로 삼켜지지 않는다.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마우스피스를 물리고 중앙에 난 둥근 구멍으로 내시경관을 넣는다. 기도를 통해 길다란 관이 쑥쑥 들어간다. 숨이 뜻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목젖에 관이 닿을 때마다 구토감이 느껴진다. 숨막혀서 발버둥을 치자 의사가 제지한다. ‘답답해도 발 구르지 마세요, 코로 숨쉬세요, 좀만 참으세요~.’ 코로 숨쉬며 내시경이 목젖과 기도를 휘젓는 불쾌한 감각에서 신경을 돌리려 애쓴다.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 잘하고 계세요, 다 끝나갑니다’ 의사는 초등학생 대하듯 나를 어르고 달랜다. 위내시경이 옅게 탄 믹스커피라면 기관지내시경은 고농축된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검사를 마치고 응급실에 돌아와 있을 때 중년의 남자 의사가 찾아왔다. 결핵일 확률이 높지만 정확한 검사결과는 균을 배양해봐야 해서 2주 후에나 알 수 있다 했다. 증상이 심각하지 않으니 일단 오늘은 퇴원하고 처방해준 항생제를 복용하라고 했다. 의사가 나간 뒤 엄마는 의사가 참 믿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자꾸 아파서 어쩌냐고 말하는 엄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는 내 손을 만지며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주말에는 푹 쉬어야 할 것 같아 부산의 본가로 왔다. 엄마는 나를 먹이려고 녹두죽을 쑤고 된장국을 끓였다.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나서야 B형 간염약을 자취집에 놔두고 왔단 걸 알게 됐다. 애초에 입원하게 될 줄 몰라 약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B형 간염은 약을 꾸준히 먹고 생활만 규칙적으로 하면 정상인 수준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먹었다 안먹었다 하면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게 된다. 이번주는 이틀동안 약을 안 먹어서, 주말동안 본가에서 지내면 나흘이나 거르게 된다. 오늘 밤에 양산에 가서 약을 가져와야 했다.     

집에 다녀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눈 앞의 사물들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이마가 뜨겁고 정신이 몽롱해 무언가를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몸살기로 지쳐있던 몸에 항생제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반응 같았다. 가야하는데, 가서 약가져와야 하는데... 이 상태로 운전하다간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가며 가려면 왕복 세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그래도 다녀와야 한다. 아픈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가 약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어떻게 그러노, 내가 가면 된다.”

“이렇게 아픈데 그 먼 데를 어떻게 다녀와, 그냥 집에 쉬고 있어. 엄마가 갔다 오면 돼.”     

궁리하던 엄마는 퇴근길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차를 타고 자취집에 들러 약을 가져오려는 것 같았다. 둘이서만 다녀오면 아버지가 왠지 나를 건방지다 생각할 것 같았고, 늙은 부모님만 보내는 게 죄스러워 엄마를 따라나섰다. 집에서 입던 추레한 츄리닝을 그대로 입고 나가 엄마와 함께 대로변에서 아버지 차를 기다렸다.      


엄마는 앞좌석에, 나는 뒷자석에 탔다. 몸살 기운때문에 몸에 힘이 없고 등허리가 아파 앉아만 있는 것도 힘들었다.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살다보면 자기 힘만으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때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뒷자석에 있는 내게 부모님이 간간이 말을 건넸다.     


‘전화에서 ‘응급실’이란 단어가 들린 순간부터 엄마는 다른 말은 아무것도 안들렸어, 아침에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얘가 대체 얼마나 큰일이 나서 응급실까지 간 건지 발만 동동 굴렀다...객혈을 할 정도면 큰 병인데 왜 말을 안했어... 마지막에 챙겨줄 사람은 가족밖에 없어... 다음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우리에게 먼저 알려라...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는 더 이상 부모를 걱정시켜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서른일곱, 이제 부모님도 아픈 아들을 돌보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어버렸다. 아직까지는 아플 때 엄마가 죽을 끓여주고 아버지가 차를 태워주지만 부모님은 점점 늙고 기력이 떨어질 것이다. 이제 아프지 말아야지... 기필코 건강해져야지... 질병의 연쇄를 끊어야지... 내가 왜 아픈지,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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