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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Apr 02. 2019

14.어른이 된 지금도 당신은 과거를 살고 있지 않나요

Epi.04. 부부, 내면 아이, 부부대화법, 심리극, 이혼,

성인이 된 진한 씨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더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진한 씨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눈을 뜨도록 했다.


Dr: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저는 성인이 된 진한 씨의 내면에는 아직 어린 진한 씨가 남아서 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진한 씨는 아직도 자신을 탓하며 두 번 다시 이별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성인이 된 진한 씨를 매일매일 불안과 공포, 긴장 속에 살게 하고 있었던 거죠. 진한 씨는 현재 성인이 되었지만 진한 씨의 내면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진한 씨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치료자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Dr: “검사가 된 진한 씨는 지금도 과거를 살고 있습니다. 진한 씨의 내면에서 과거 어머니를 위협하던 아버지는 현재 내 아내와 아들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이고 과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어머니는 현재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아내와 아들, 그리고 과거의 어린 진한 씨는 지금 성인이 된 현재 진한 씨인 것입니다. 현재 성인이 된 진한 씨는 오늘도 과거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 어린 진한 씨의 죄책감이 지금은 오히려 아내에게 과도한 통제로써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보고자 하는 것은 진한 씨가 표출하는 분노감의 기저에는 죄책감, 불안, 공포, 두려움이라는 1차 감정이 다는 겁니다. 진한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죄책감 - 자신에 대한 분노감 - 투사, 부정 - 타인을 향한 분노감


진한: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까 저는 지금도 아내의 남편이 아닌 어머니의 아들로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제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누구라도 저처럼 가족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아내가 힘들어해도 길게 봐서는 내가 하는 통제가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보고 나니 아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그저 제가 스스로 해소하지 못한 죄책감을 부정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를 통제하면서 그저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저 아내일 뿐인데 제 죄책감을 처리하는 도구였던 것 같습니다.”


Dr: “지금 진한 씨는 아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자신이 죄책감을 해소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이야기하면 아마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한 어린 진한 씨의 죄책감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아내에게 자신에 대한 분노를 투사하는 방식으로 내적 분노감을 처리했을 것입니다. 왜 내 말을 따르지 않냐며,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그렇게 불행해지고 싶냐며 말이죠. 진한 씨. 그럴까요?”


진한: “네. 선생님. 너 만큼은 우리 엄마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겠죠. 너 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거겠죠. 그런데 그런 제 강박이 아내를 더 불행하게 했고요.”


Dr: “그래요. 진한 씨. 진한 씨는 지금 아내를 지키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아내를 힘들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어린 진한 씨의 죄책감이 결국 어린 진한 씨를 분노하게 했고 결국 어린 진한 씨의 분노는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아내에게 표출되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직접 아내에게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을 전달하세요.”


이는 부부치료 초반에도 사용했던 치료 기법인 재연 기법(Enactment)으로 부부치료를 진행하는 동안 부부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치료자와 주고받는 것보다 부부 상호 간의 직접적인 전달을 하도록 치료자가 지시하는 기법이다. 재연을 사용한 경우 훨씬 더 치료적이고 감정 전달이 크기 때문에 치료시간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진한 씨는 머뭇거린다. 과거를 되돌리기엔 너무 오랜 시간 아내를 힘들게 했었기에 진한 씨는 주저하게 된다. 그런 진한 씨를 수미 씨는 그저 바라보고 있다. 그런 수미 씨를 향해 진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진한: “…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 널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다 날 위한 거였어… 어떡하지… 너무 미안한데 이건… 나는 몰랐어. 내 안에 엄마를 떠나보낸 어린 내가 이렇게까지 엄마를 지키지 못한 자신한테 화가 나있을 거라고는 말이야. 누군가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느껴지면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나 자신에게 화가 났나 봐. 여보. 근데 나 어떡하지? 알기는 알겠는데 아직도 내 안에서 화가 난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여보.”


진한 씨는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진한 씨가 논리적으로 자신의 분노 행위를 과거와 연결하며 아내에게 설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한 씨는 자신의 분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꾸며내지 않은 진한 씨의 솔직한 표현이었다. 진한 씨는 예쁘게 포장하며 이 부부의 갈등을 덮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며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진한 씨는 안정보다 아내와 함께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서투른 진한 씨의 말이 오히려 수미 씨에게 더 강렬한 감정으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나는 진한 씨가 직접 아내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도록 권했고 진한 씨는 치료자의 요구에 충실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수미 씨에게 남편의 진심을 듣고서 느껴지는 바를 직접 남편에게 전달하도록 권했다. 수미 씨는 주저하지 않고 남편에게 다가갔다.


수미: “나조차도 당신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 당신이 그런 상처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조차도 당신은 내게 말하기 두려울 만큼 불안했을 거 같고 그래. 하지만 나는 당신이 우릴 미워해서 그렇게 화낸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다만 내가 너무 힘들었을 뿐이야. 그런데 어머님께서 정말 불행했을까? 나는 잘 모르겠어. 당신은 어머님께서 살았을 때도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님께는 자랑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어머님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만 믿고 있는 그 어린 당신이 화를 풀고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결국 행복해져야 우리도 행복해진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당신이 불행한데 우리가 행복해지는 건 가능하지 않아. 여보.”


진한 씨는 수미 씨가 내미는 손을 꼭 잡고서 고맙다고 했고 그런 진한 씨를 향해 수미 씨는 웃어주었다. 진한 씨는 아내가 도와준다면 자신은 가정을 위해 어떤 치료라도 받을 것이고 나아질 거라고 했다. 이미 다른 연구를 통해서 아내의 정서적인 지지 정도가 높은 남편이 높은 직업적 성취를 보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듯이 진한 씨도 아내의 정서적인 지지 아래에 높은 치료적인 성취를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진한 씨에 대한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서로 1차 감정으로 소통하는 부부대화법을 현실에서 익숙하게 사용 가능하도록 부부치료 시간을 수 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인이 된 진한 씨의 내면에 남아 아직도 자신에 대한 비난, 자신에 대한 분노를 멈추지 않는 어린 진한 씨를 달래야 한다. 그리고 이때 부부치료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사이코드라마 (psychodrama)이다.


사이코드라마는 1936년 J.L. Moreno가 제안한 기법으로 자신의 갈등 상황을 말로써 설명하기보다 연기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갈등과 연관된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극은 주인공의 삶을 중심으로 주인공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동하며 주인공의 삶을 탐색한다. 갈등 상황을 다시 주인공에게 제시하고 그가 자신 또는 상대역을 연기하며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도록 하는 치료방법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주로 진한 씨의 어린 시절을 다루었다. 첫 번째 상황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툰 후 불안에 떨고 있는 어린 진한 씨, 두 번째 상황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공부에만 매진하던 진한 씨, 세 번째 상황은 차마 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날의 진한 씨… 이 순간들은 진한 씨가 자신의 현재를 살지 못하고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순간들이었다.


사이코드라마 첫 시간에는 첫 번째 상황에 대해 치료를 진행했다. 과거를 연기하는 진한 씨는 보조연기자가 연기하는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분노도 표출하고 어머니에게는 차마 어린 진한 씨가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며 죄책감을 처리하도록 했다. 진한 씨는 어린 진한 씨로 돌아가서 제발 아버지도 자신도 버리고 떠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면서 어린 진한 씨의 분노를 표출했다. 또한 진한 씨는 어머니 입장에서 연기를 하고 보조연기자가 어린 진한 씨를 연기하면서 진한 씨는 어린 자신을 키우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유일한 행복이었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진한 씨가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본 어린 자신은 남편의 학대에 시달리는  어머니에게 한줄기 빛과 같이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진한 씨는 어머니에게 자신이라는 존재가 인생에 덫이 아니라 유일한 행복이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두 번째 상황을 사이코드라마로 진행했다. 진한 씨는 책상에 앉아있는 어린 진한 씨에게 제발 일어나서 그만 책 보고 나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에 담겨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을 서럽게 표현했다. 정말 너무 서럽게도 진한 씨는 어린 진한 씨를 연기하는 보조연기자에게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울면서 소리쳤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상황에 대한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했다. 진한 씨는 보조연기자가 임종을 맞이하는 어머니를 연기하자마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일찍 떠나냐고. 왜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는 거냐고. 왜 내가 성공하는 걸 보지 못하냐고...


진한 씨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놀지도 않고 공부만 했는데 이렇게 떠나가면 자신은 앞으로 어떡하냐며 어머니를 연기하는 보조연기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도록 나는 진한 씨를 가만 두었다. 진한 씨의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다 쏟아내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서 기다렸다. 수미 씨도 눈물을 닦으며 그저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차분해진 진한 씨에게 어머니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도록 했다. 진한 씨는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볼 때 어머니께서 진한 씨에게 어떠한 감정,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을지 표현하도록 권했다. 진한 씨는 가만히 자신을 연기하는 보조연기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랑한다고.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더 지켜주지 못하고 일찍 떠나서 미안하다고. 너무 아버지를 미워하지 말고 자신도 미워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네가 있어서 엄마는 행복했다고. 네 엄마로 살아서 너무 행복했다고…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서 진한 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무리 손으로 닦아도 눈물을 어찌할 수 없다. 지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흐르는 이 눈물은 인이 된 진한 씨가 어린 진한 씨와의 이별을 이뤄내고 있음을 의미했다.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유일한 어머니의 행복이었음을 이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수 차례에 걸쳐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하며 진한 씨는 과거 어린 진한 씨의 분노감, 죄책감을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진행하며 힘들어하는 진한 씨 곁에는 항상 수미 씨가 있었다. 진한 씨는 아내의 넘치는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아픈 과거와의 이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후 진행된 여러 차례 부부 면담, 사이코드라마 (심리극), 개인면담을 통해 진한 씨와 수미 씨는 1차 감정으로 서로 대화하는 방법,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우자의 감정에 공감하는 방법 등을 실제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 관계는 마치 톱니바퀴와도 같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점점 더 관계는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한번 치료적인 도움을 받아서 맞아 들어가면 저절로 맞춰서 돌아간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지속적으로 부부치료를 진행한 결과 부부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한다. 물론 진한 씨는 아직도 수미 씨에게 매사에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아내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고 분노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진한 씨의 초조함은 이제 성인이 된 진한 씨에게서 보이진 않는다. 그저 남편으로써 아빠로서 진한 씨는 아내와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부부는 소소한 갈등 상황에서도 분노, 짜증, 화 같은 2차 감정이 아닌 기저에 존재하는 1차 감정으로써 서로 대화를 한다. 부부는 부부대화법이 수정된 것만으로도 의견 차이를 대화로 풀지 못한 경우가 없을 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진한 씨의 과거 상처를 보듬고 감싸준 수미 씨,

수미 씨와의 강한 애착을 바탕으로 자기 내면에서 홀로 분노하고 있는 어린 자신과 화해한 진한 씨.

그렇게 그들은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했다.




부부 생활은 길고 긴 대화 같은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다른 모든 것은 변화해 가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불 속을 헤쳐 나가는 듯한 이 세상의 모진
시련을 함께 겪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 워싱턴 어빙 -
 



Episode 04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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