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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Jun 06. 2019

26. 현재가 불행할수록 과거는 선명해진다.

Epi.07. 부부, 사랑, 미안함, 불안, 남편, 아내

하루 씨는 불안해 보였다. 하루 씨는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불행해졌고 현재의 불행이 깊어질수록 과거 기억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남편을 힘들게 했던 과거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하루 씨는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하루 씨는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해도 함께 사는 남편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이었을  같았다.      




Dr: "저도 최근에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 씨가 입원해 있으면서 남편 분은 지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되지 않나요? 하루 내내 정신없이 살고 있어서 연락을 못 받고 못 하는 거 아닐까요?"     


하루: “그럴까요? 그런데 1주일이 넘었어요. 제 전화를 받지 않는지는...”     


Dr: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주일 동안 아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나쁜 징조처럼 느껴졌다. 일단은 하루 씨를 진정시키고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다. 나는 하루 씨가 집에 가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며 다시 행복해지는 것까지 마쳤을 때에 발 뻗고 잠을 잘 것 같았다.


설마 그녀를 집에 보내는 날에 그녀의 손에 이혼 서류가 쥐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겠지? 나는 하루 씨의 퇴원을 상의하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정도 울리도록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실 나는 오히려 내 전화도 받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딱 5번 정도 신호음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끊으려고 했다. 그리고 하루 씨에게 가서 역시 당신 남편은 다른 전화도 받지 못한다고 하고 싶었다. 역시 하루 종일 일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힘들어서 전화를 받기 힘든 것 같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가고 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즈음 그는 전화를 받았다. 좋은 징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전화를 끊을 준비만 하고 카운팅하고 있던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남편에게 그저 한번 내원하셔서 면담을 하자는 말만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틀 후 저녁 6시. 오후 외래 예약 환자는 모두 다 병원을 떠났고 나는 혼자 진료실에 남았다. 불과 10분 전까지도 시끌시끌했지만 저녁 6시를 기준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병원은 조용해진다. 하루 씨의 남편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6시 30분이다. 30분 후에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루 씨의 슬픈 예감이 사실이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퇴원하는 하루 씨에게 남편을 선물하고 싶었기에 지금 내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오후 외래 시작할 때 가득 내려놓은 커피는 이미 동이 나버렸기 때문에 아까보다 더 진하고 풍미가 깊은 커피를 한번 더 내렸다. 나는 진하고 따뜻한 커피가 몸도 마음도 지친 그를 위로할  있길 원했. 진료실 안에 부드럽고 고소한 커피의 향이 가득 퍼질 무렵 누군가가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음속에도 이 따스한 기운이 퍼져 나가길 바라며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동진: “네. 선생님. 늦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Dr: "아닙니다. 저도 금방 진료가 끝났는데요. 오히려 제가 바쁘신데 오시도록 해서 송구스럽네요.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오셨나요?"     


동진: “네. 오늘은 장모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잠시 봐주시기로 했어요. 주치의 선생님께서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드리니까 흔쾌히 아이들을 봐주시겠다고 하셔서요. 선생님. 진료실에는 항상 이렇게 좋은 커피 향이 느껴지네요. 진료받으러 오는 분들이 여기 들어오기만 해도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Dr: "기술이 부족하니 꼼수라도 부려야죠. 농담이고 제가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이렇게 커피를 많이 내려놔도 결국 거의 제가 다 마셔요."  

   

동진: “에고 고생하시네요. 선생님. 그런데 아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갑자기 오라고 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Dr: "급한 일은 아닙니다. 급한 일이었다면 전화로 말씀을 먼저 드렸겠죠. 우선은 커피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까요?"

    

동진: “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내심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는 똑같은 머그잔 두 개를 꺼내서 커피를 담아낸다. 나는 두 잔 중 한 잔을 동진 씨에게 건넨다. 평소보다 나는 머그잔에 커피를 충분히 담아냈다. 동진 씨와의 이야기가 짧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전해받은 커피 잔을 한 모금 마신 후 웃음을 지으며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내 나는 그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Dr: “그래요. 입원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 된 것 같아요. 증세도 많이 좋아져서 외래로 치료받으셔도 될 것 같고요. 최근에 하루 씨를 보신 적이 있나요? 하루 씨가 좋아 보이던가요?”     


나는 하루 씨가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루 씨와의 면담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동진 씨가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진: “사실 최근에는 아내를 보지 못했습니다. 전화도 몇 번 왔는데 받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얼굴을 본 적은 2주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내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은 장모님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Dr: "아. 그래요. 전화를 받지 못하셨군요. 하루 씨가 몇 번 전화를 하셨군요. 전화를 다시 걸어보시지 그러셨어요? 하루 씨가 연락을 기다리지 않을까요?"     


동진: “네. 그렇죠. 그게 참 쉽지 않네요. 아내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응? 무슨 말을 어떻게 하려고 쉽지 않다는 걸까? 혹시 진짜 동진 씨는 하루 씨를 떠나고 싶은 거였을까? 진짜 이혼까지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고 하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그가 겪고 있는 고충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떠난다면 앞으로 외로이 살아갈 하루 씨가 마음에 걸린다.


Dr: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동진: (침묵)     


동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애꿎은 커피 잔만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멈추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동진 씨의 침묵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동진 씨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짊어져야 하기에 나는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커피 잔의 테두리를 따라 돌던 동진 씨의 두 번째 손가락이 멈추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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