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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Jun 06. 2019

27. 힘들어할 그녀를 지켜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Epi.07. 고백, 취중진담, 이별, 포기, 회피, 사랑,

동진: “너무 미안하다고요...”     


Dr: "미안하다고요?"


동진: “. 아내가 이렇게 된 건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아내는 정말 행복한 여자였거든요. 그런데 저를 만나고 그녀는 불행해진 것 같아요.”     


Dr: "지금 말씀만 들어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 있나요?"   

 

동진: ”아내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입학 후 첫 새내기 모임이었어요. 아내와 저는 경영학과 동기였어요. 아내는 성격도 활발하고 예뻐서 저는 아내를 처음 보고 반했어요. 저는 수줍고 내성적인 편이거든요. 항상 웃음이 넘치는 아내를 정말 좋아했어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아내는 과에서도 항상 1등을 하고 성격도 좋아서 교수님들도 기대하는 학생이었어요. 학기 초에 경영학과 동기들과 함께 여행도 많이 다니고 아내와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당연히 아내와 단 둘이 찍은 사진은 없었어요. 단체사진을 찍은 걸 보면 아내는 항상 가운데에 저는 항상 모퉁이에 있었죠. 친한 친구들은 제가 하루를 좋아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진 찍을 때마다 은근슬쩍 하루 옆에 가라고 했지만 저는 차마 다가가지 못했어요. 하루가 제 마음을 눈치채면 저를 피할까 봐 걱정되더라고요."  


동진 씨는 정말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동진 씨는 다시 그 순간을 사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진: “결국 고백도 못하고 무슨 행성처럼 하루 주변을 맴돌다 보니 1년이 거의 되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2학기 종강파티였던 것 같아요. 종강파티에 선배들이 왔는데 거기에 평소 술 마시는 거로 후배들을 괴롭히는 선배 인간이 있었어요. 역시나 그 인간은 모임에서 우리 동기들에게 사발식을 시켰어요. 누구 하나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죠. 아직 1학년일 뿐이니까요. 3000cc 맥주 피처에는 소주 반, 맥주 반으로 채워졌죠. 평소 술을 잘 마시는 하루는 맨 마지막이었고 저는 하루 앞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전해져 오는 맥주통에는 별로 양이 줄지 않는 거예요. 거의 제 앞까지 온 맥주통은 반 이상 술로 채워진 상태였어요. 하루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여서 그런 지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하루도 저처럼 술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상태라서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죠. 저도 좀 술이 들어간 상태였는데 제가 술을 계속 들이켜자 하루가 저를 보며 걱정하듯이 이제 그만 넘기라고 하더라고요. 하루가 저를 보며 걱정하는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계속 그 얼굴이 보고 싶었나 봐요. 그대로 술을 다 마셔버렸으니까요. 거의 자해 수준이었죠.”     


Dr: "술 좋아하세요?"    


동진: “술요? 아뇨. 저 술 안 좋아해요.”     


Dr: "그럼?


동진: “비겁한 고백 정도로 생각하죠.”     


비겁한 고백이라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널 위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다 들이켰다. 고로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다. 비겁하지만 나는 고백을 한 거다. 뭐 이런 건가?   

     

동진: “1년 간 고백도 못하고 군대 갈 걸 생각하니까 저도 적잖이 답답했나 봐요. 지금 이렇게 헤어지면 하루가 군대 간 나한테 편지라도 보내줄 테지만 고백했다가 실패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마음을 표현하고는 싶고요. 결국 그게 2000cc 정도 되는 사발을 원샷한 거로 표현된 것 같아요. 설령 하루가 제 그런 마음을 거절한다 해도 저는 그냥 친구로서 마셔준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하면 되고 만약 하루가 제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리고 받아준다면 저는 사실 널 한시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면 되니까요.”     


듣고 보니 정말 비겁한 고백이다. 이걸 어떤 여자가 고백으로 느낀다는 거지? 들으면 들을수록 고백 같지도 않은 고백이라서 할 말이 없다. 한편으로는 너무 소심한 남자가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우선 이 남자의 얼굴이 가관이다. 그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엄즐거운 표정이다. 동진 씨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소녀들이 밤늦게까지 누워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좋아하는 남자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커피 한잔씩 마시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동진: “그러고 저는 기억을 잃었어요. 다음 날은 숙취에 하루 종일 머리 통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버렸어요. 제가 술에 취해서는 하루한테 2차, 3차, 4차까지 거의 10분 간격으로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끔찍하죠. 1년 동안 참아온 고백을 만취상태에서 원도 한도 없이 했더라고요. 정말 군대에 가서도 고백 못해서 아쉬워할 일은 없을 만큼 고백을 밤새도록 했더라고요. 선배들과 동기들한테도 내가 군대 간 동안 아무도 고백하지 말라고 하고 하루한테 나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 성공할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하고. 정말 듣고 있는 내내 죽고 싶더라고요."


듣고 있는 내내 나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바둑에서 초조할 때 악수를 둔다더니 여태 정신과 의사 하면서 들어본 중에 가장 최악의 고백이었다.


동진: "친구들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저한테 그렇게 개판으로 고백할 것을 뭘 그렇게 혼자 끙끙 앓았냐면서 엄청난 모욕감을 줬죠. 그런데 그러면서도 제가 궁금한 건 하루의 반응이었어요.”     


그래. 맞다. 어쨌든 벌어진 일이고 개판이든 소판이든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의 인생 최악의 악수이자 비겁하면서도 당당한 그의 취중고백에 하루 씨는 어떤 반응이었을지가 궁금했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뭘 저렇게 신나 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지금 아주 즐거워 보였다.      


동진: “하루는 그런 저의 주정을 다 받아줬다더라고요. 제가 사랑한다고 하면 하루도 사랑한다고 해주고 제가 기다려달라고 하면 하루도 기다려준다고 해줬다고 하더군요.”     


Dr: "그렇게 두 분은 사귀게 되었네요."   


동진: “아니요.”     


Dr: "아니라고요?"


동진: “네.”     


Dr: "왜요?"


동진 씨는 말없이 커피 잔을 들고서 한 모금 마신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진: “저는 그 날 이후 하루를 피해 다녔어요. 그리고 1학년을 마친 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고요. 그리고 2달 후에 입대했어요.”     


Dr: "1년 내내 좋아하셨는데요? 하루 씨도 아무리 술주정이라고 해도 동진 씨의 취중고백을 받아줬다면서요? 그럼 한번 제대로 고백하고 싶지 않았어요?"


동진: “저는 어차피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는데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면서 하루를 붙잡는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입대한 후에 하루가 혼자 남겨지고 위로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제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았어요. 하루를 너무 좋아하지만 하루가 홀로 남겨져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힘들 것 같았어요.”     


Dr: "아니... 그게 대체 어느 동네 오지랖인가요."


어라...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의 날것이 튀어나왔다. 정말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정제되지 않은 말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내 친구였다면 수많은 창의적인 욕설을 써가며 그의 오지랖을 비난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미 그는 이미 나 같은 친구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동진: "그러게요. 친구들도 제가 미친놈이라는 둥 도라이라는 둥 팔푼 어치도 안 되는 칠푼이라는 둥 별별 소리 다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쉽지 않았어요."


Dr: "그냥 하루 씨가 알아서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본인이 감당할 수 있으면 감당할 것이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감당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동진: “그게 두려웠어요. 하루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걸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어요.”     


Dr: "그럼 그건 하루 씨를 위한 선택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임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요?"   


동진: “. 그게  맞는  같아요. 하지만 하루는 저와는 너무 다른 아이였어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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