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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Jun 06. 2019

28. 아내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Epi.07. 고백, 사랑, 아픔, 꿈, 포기, 육아

동진 씨는 잠시 핸드폰을 꺼내어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게 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건네받은 핸드폰을 들여다봤고 거기에는 눈 쌓인 곳에서 군복 입은 남자와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동진: “하루가 얼마나 당당하고 당찬 아이냐면요. 제가 도망치듯 군 입대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났던 것 같은데 어느 날 누가 면회하러 왔다고 해서 나가봤더니 하루가 눈 앞에 있었어요. 그때 모습이 아직도 선하네요. 너무 보고 싶었고 너무 그리워서 하루 사진 한 장만 보면서 군 생활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하루가 눈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하루는 부대에 자기가  여자 친구라고 이야기하고 외출시켜달라고 했어요. 아주 당당하게 요구하더군요. 위병소를 지나자마자 다짜고짜 하루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안 되는 제게 불같이 화를 냈어요.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대관절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는 해도 그렇게 밤새도록 사랑고백을 하고 아무런 말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렇게 입대하는 인간이 누가 있냐고요. 그때 그렇게 술 마시고 이야기한 것이 진심이었냐고 저를 추궁하더군요. 그렇게 하루가 저를 찾아주는 순간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저는 제가 얼마나 하루를 좋아하는지 발목까지 눈이 쌓인 강원도 화천의 어느 논밭에서 30분 넘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너무 사랑하지만 거절당할까 봐 고백도 못하고 옆에서 친구처럼 있었고 군 입대한 후에 하루를 혼자 남아 힘들어할 것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말이죠. 하루는 그런 제 멱살을 잡더니 갑자기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그리고 한마디 말했어요.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루는 그렇게 멋진 여자였어요. 정말 너무 멋지고 당찬 여자였어요. 저는 그런 하루를 너무 사랑했고요.”     


Dr: "하루 씨는 정말 멋진 여성이었네요. 이야기만 들어도 하루 씨는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인 분 같네요."

    

동진: “맞아요. 하루는 정말 자기 스스로를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아이였는데 저와 결혼한 후에 하루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되었고 그 후에 하루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하루를 그렇게 만든 건 저였고요.”     


Dr: "하루 씨에게 듣지는 못했던 내용이네요. 하루 씨는 단 한 번도 남편을 탓한 적이 없거든요. 동진 씨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동진: “하루는 대학교수가 꿈인 아이였어요. 그리고 교수님들도 하루가 충분히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루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 과정을 들어갔고 저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어요.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며 하루의 꿈을 지원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오랜 연애 기간 끝에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저희 계획과는 달리 결혼한 그 해에 하루가 임신을 했었죠. 계획이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었어요. 저보다 하루에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이미 하루는 매일 밤 10시까지 대학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거든요. 하지만 하루는 임신도 일도 다 잘 해낼 수 있다고 오히려 저를 안심시켰어요. 그리고 실제로 하루는 정말 너무 잘 해내더라고요. 그런데 하루는 임신 말기에 조기 진통을 자주 겪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내의 상황을 듣고 나서 당장이라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어요.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날 수 있다고 했어요. 아내는 그 말을 들은 후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뤘죠. 그때 처음 저는 하루가 진짜 힘들어하는 걸 봤던 거 같아요. 결국 아내는 고민 끝에 출산을 위해 자신을 꿈을 미루기로 했어요. 실질적으로 교수 임용 한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꿈은 산산조각 난 거나 다름이 없었어요. 아내는 절대 안정을 취하면서 몸을 잘 추슬렀고 결과적으로 첫째 아이를 순산했어요. 아내는 아이를 낳는 순간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저도 아내가 자신이 꿈을 포기한 대신 건강한 아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아내는 정말 크게 상심하는 일이 있었어요. 교수 자리를 두고 자신과 경쟁하던 남자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쓴 논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에 실리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어요.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 아내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어요. 제가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는 아기를 재우고 거실에 불은 다 꺼두고 혼자 티브이만 틀어놓고 멍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종종 있었어요. 제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 하루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저 역시 그때 승진 시즌이라서 업무를 처리하느라 미처 아내에게 시간을 쓰진 못했어요. 사실 그때 저는 괜찮아 보이지 않는 하루가 괜찮다고 하는 말을 진짜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외면한 것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저는 하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익숙지 않았어요. 제 생각에 그때부터 아내의 우울증은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아내를 더 감싸주고 보듬어줘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군대로 회피했던 것처럼 그때의 저는 회사로 회피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     


Dr: "아내가 자신과 결혼한 후 꿈을 포기하고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네요."

    

동진: “네. 결국 제가 걱정하는 상황, 제가 두려워하는 상황이 된 거니까요. 하루가 불행해질 것이 두려워서 사랑해도 고백도 하지 않고 입대한 저인데 진짜 하루가 저와 함께 하며 불행해지니까 역시 나는 하루한테 고백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제가 불행한 하루를 회피하는 동안 하루는 더 불행해졌고 그렇게 고통받으며 살았던 거예요. 선생님. 하루가 조증일 때 제가 능력도 없고 돈도 못 벌어오고 잘난 것도 없다고 하는 말. 모두 다 하루의 진심처럼 들려요. 저도 알아요. 조증일 때 하루가 하는 말이 하루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저는 착한 하루가 차마 그동안 제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처럼 느껴져요. 하루가 제게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저와 함께 하며 불행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하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주일 동안 하루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한 달 정도 전에 하루를 입원 치료받도록 하려고 여기 데려온 날 선생님과 하루가 면담하는 것을 들으면서 하루가 그간 투약을 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루가 외래치료를 중단하고 투약도 중단한 기간을 보니까 항상 제가 일 때문에 하루를 잘 챙기지 못했던 기간이었어요. 아이 둘을 온전히 하루에게만 책임 지우고 저는 일하느라 하루 한 명조차도 챙겨보지 못했던 기간이더라고요. 늦게 퇴근한 저는 하루에게 요즘 아이들은 힘들게 않는지, 약은 잘 챙겨 먹는지, 약 먹고 불편한 건 없는지, 몸은 아픈 곳 없는지 그런 질문조차도 하지 못했어요. 그걸 알고 나니 하루가 아픈 것이 결국 저 때문인 것 같고 제 책임인 것 같아서 하루가 저를 찾는 걸 아는데도 전화를 받기가 힘들었어요. 군 생활할 때 하루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저를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사랑해준 하루한테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하루는 정말 예쁘고 착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꿈도 많은 여대생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루는 저와 함께 하는 동안 모든 꿈을 잃어버렸어요. 그런 하루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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