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Aug 16. 2019

29. 결과를 수용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Epi.07. 과거, 현재, 미래, 수용, 남편, 아내, 미안함, 소통

Dr: “동진 씨가 힘들어하시는 것이 이해되네요.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뒤늦게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알게 되는 경우 우리는 너무 당혹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있죠. 하지만 동진 씨도 모든 것을 다 알고 행동할 수는 없어요. 하루 씨가 동진 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터놓고 말하지 않으면 동진 씨도 하루 씨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동진: “그런데 저는 알잖아요. 제가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더 잘 챙기지 못했다는 걸요.”


Dr: “동진 씨. 우리는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토대로 과거를 해석하죠 그 말은 현재 결과에 따라서 미래에 대한 예측도 과거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는 거죠. 아내의 증세가 재발한 결과를 근거로 동진 씨는 자신의 과거 행동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건 아닐까요?”


동진: “제가요?”


Dr: “네. 동진 씨는 당시 진급 시기와 맞물려 있지 않았나요?”


동진: “네.”


Dr: “그럼 동진 씨가 혼자 돈을 버는 상황에서 진급 또한 동진 씨 부부에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그때는 하루 씨도 재발하지 않은 상태였고 승진 시기였다면 동진 씨는 일에 보다 집중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하루 씨가 재발했다는 결과만으로 당시 본인이 승진을 위해 일에 매진했던 것을 지나치게 잘못된 선택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만약 하루 씨도 재발하지 않고 동진 씨가 승진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일에 매진한 것에 대해 자신을 비판하실 건가요?”


동진: “그건 아니겠죠. 그럼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루도 제가 승진하는 걸 자기 일처럼 정말 좋아하거든요.”


Dr: “네. 그래요. 당시 상황에서 동진 씨는 나름 최선을 다한 거예요. 어차피 우리 삶에 있어서 최상의 선택은 없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거죠.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당시 최선의 선택을 폄하하는 것은 무엇보다 동진 씨 부부에게 전혀 도움이 안 돼요. 당시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지만 결과가 안 좋을 수는 있는 거예요. 노력과 보상이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노력을 했지만 결과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과 노력을 비난해선 안 되는 거죠. 그런 경우 우리는 그저 결과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동진: “어떻게 수용해야 하죠?”


Dr: “당시 자신은 승진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고 결과적으로 아내가 재발해서 괴롭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동진 씨. 안타깝지만 하루 씨가 재발한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과거 하루 씨의 아픔을 부정해서도 회피해서도 안되지만 자신에게 지나치게 책임을 물으려 해서도 안돼요. 그건 과거를 수용하는데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에요.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해도 결과가 안좋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세요. 그래야 현재에 다시 집중할 수 있어요.”


동진: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Dr: “현재를 만족스럽게 만드는데 집중하세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집중하세요.”


동진: “그럼 저와 하루의 불행한 과거가 달라지나요?”


Dr: “현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서 과거 사실이 달라지진 않아요. 하지만 현재가 행복해지면 내 마음속 과거 상처 기억이 희미해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현재를 계속 불행하게 둔다면 내 마음속 과거 상처 기억은 계속 선명하게 느껴지겠죠.”


동진: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Dr: “예를 들어서 동진 씨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첫사랑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로 헤어졌고 동진 씨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겪었죠. 그런데 현재 동진 씨의 옆에 첫사랑 그녀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해주고 나도 더 사랑하는 여성이 아내라면 동진 씨는 과거 첫사랑과의 이별로 인한 고통이 선명해질까요? 희미해질까요?”


동진: “희미해지겠죠.”


Dr: “그렇죠. 그리고 아마 첫사랑의 아픈 기억도 그저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 정도로 떠올릴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런데 현재 동진 씨가 결혼한 여성과 이혼하고 혼자가 된 상황이라면 첫사랑과의 이별이 더 선명해질까요? 희미해질까요?”


동진: “더 선명하고 안타깝게 여겨지겠네요.”


Dr: “그렇다는 거죠.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 해도 현재 내가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살아간다면 그 기억은 더는 이전처럼 아픔을 주지 못할 거예요. 현재에 집중하세요. 과거를 수용하고 현재에 집중하세요. 과거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부정하지도 회피하지도 말고 그저 수용하세요. 그리고 현재에서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동진: “하루랑 지금 다시 행복할 수 있다면 과거는 희미해질까요?”


Dr: “분명 그리 되실 겁니다. 하루 씨는 현재 증세가 다 호전되었어요. 이제는 집에 돌아갈 준비가 되었어요. 투약만 규칙적으로 이뤄지고 외래치료를 꾸준히 받으신다면 이전처럼 입원 치료가 필요한 수준으로 재발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커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접어두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퇴원해도 제가 매주 외래로 하루 씨를 체크할 겁니다. 그리고 혈중 약물 농도 검사를 자주 시행해서 하루 씨가 규칙적으로 약물 순응도를 확인할 겁니다. 하루 씨가 투약이 불규칙적이게 된 시기를 따져봤을 때 하루 씨가 육아에 지친 시기였다면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육아 부담을 줄여주세요. 동진 씨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고요. 그런데 여담이지만 승진은 하셨나요?”


동진: “네. 승진은 했어요.”


Dr: “그럼 결과적으로 현재 상황은 최선의 상황이네요. 하루 씨는 입원 치료받고 조증 증세가 호전되어서 원래의 하루 씨로 돌아왔고 동진 씨도 승진이 되었고요.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하루 씨는 동진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


동진: “하루한테 그래도 미안한 것이 많아요. 정말 사랑하고 있는데 하루가 그걸 모를까 봐 걱정도 되고요.”


Dr: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지금 하루 씨를 만나서 그동안 더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해보세요. 그럼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다 풀어질 겁니다.”


동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시간을 너무 뺏은 것 같네요.”


Dr: “아닙니다. 저도 많은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하루 씨랑 평생 행복하시도록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동진: “감사합니다.”


하루 씨도 동진 씨도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에는 각자가 내면에 담고 있는 서로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도 큰 사람들이었다. 그들조차도 서로를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루 씨는 동진 씨가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동진 씨는 하루 씨가 자신을 만나 불행해하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관점을 상대 배우자 또한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 하루 씨가 자기 자신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겼고, 동진 씨가 자기 자신을 아내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겼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자기 인식은 상대방과의 소통에 지장을 초래한다.


분명한 것은 소통을 해야 한다. 서로가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때로는 소통을 하면서 목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소통을 해야 한다. 소통을 하며 내 생각이 아닌 상대 배우자의 생각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실수도 후회도 없다. 소통을 해야 내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다. 내 관점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부부 관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갈등의 단초가 된다. 항상 내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달의 반대편처럼 말이다.


동진 씨는 면담 후 바로 병실로 올라가 하루 씨를 만났고 그 간의 미안함을 이야기했다. 하루 씨는 오히려 동진 씨가 자신을 떠날 준비를 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동진 씨는 당연히 이를 부정했고 둘 사이에 그간 오해는 눈 녹듯이 풀렸다. 그리고 정확히 1주일 간의 유지치료 후 하루 씨는 퇴원을 했다. 그리고 하루 씨는 매주 진료실을 찾고 있다. 그녀는 현재 아주 행복해 보인다. 규칙적으로 투약만 한다면 두 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난 후 그녀의 삶은 행복으로 충만해졌다. 약속대로 그녀는 투약을 규칙적으로 잘하고 있고 주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혈중 약물 농도 또한 안정적으로 잘 유지가 되고 있다. 동진 씨는 과거의 불행을 그저 수용하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의 행복이 높아질수록 과거는 점점 희미해짐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외래를 찾는 하루 씨와 동진 씨의 모습은 대학 시절 그들의 모습처럼 매우 밝다. 하루 씨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동진 씨는 여전히 수줍어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부부보다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소통하고 있다.


The end

매거진의 이전글 28. 아내는 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