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대학 동창을 만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시다.
그녀와 함께 학교에 다닐 때 같은 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시던 그녀의 어머니를 몇 번 뵌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는 엄마가 일하시는 것이 흔하지 않았기에 대학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하신다는 그녀의 어머니가 멋져 보였다. 친구들 모두 그녀를 부러워했지만 그녀는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교직원으로 오랜 세월 근무하신 후 정년 퇴직하셨기 때문에 풍족한 연금이 나왔다. 혼자서 생활하고 여가를 누리시기에 충분한 금액이니 은퇴 생활을 멋지게 즐기셨다. 내 친구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느라 동동거렸지만 여가 생활에 푹 빠진 그녀의 엄마는 단 하루도 그녀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았다. 자식이 둘이나 되는데 그녀의 아이만 봐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그것은 핑계였다. 평생 숫자만 다루셨던 그녀의 어머니는 감정이 메마른 분이셨고 손자 손녀들을 살갑게 대해주신 적이 없었다.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는 손자를 한 번도 재워주신 적이 없다고 하는 걸 보면 보통 할머니들과는 다른 분이셨던 것 같다.
그녀의 어머니는 연금으로 여행도 다니고 각종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아름다운 노년을 보냈다. 손재주도 많으시고 뭐든지 빨리 배우시는 편이라 피아노와 가야금은 수준급 실력이고 서양화를 하시다가 동양화까지 섭렵하셨다고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엄마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대면대면한 모녀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통화했기 때문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엄마는 집 현관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고 달려간 그녀보다 더 놀란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수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에 기억력까지 비상해서 똑똑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일이 몇 번씩 반복되자 결국 그녀의 어머니도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말았다.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는 않아서 낮에는 데이 케어 센터에 가시고 저녁 때는 친구가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 성인이 된 후 이십 년 넘게 엄마와 떨어져 지냈던 그녀는 뒤늦게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항상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나의 친구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런 대면대면한 모녀가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했으니 모든 것이 다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엄마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녀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운다. 수험생인 아이 둘의 학원비가 만만치 않고 남편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그녀의 모든 습관에는 알뜰함이 배어있다. 모든 생필품은 세일할 때를 기다려서 구입하고 화장품도 가장 저렴한 것으로만 구매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1회에 10만 원이 넘는 마시지를 매주 받으시고 화장품도 최고급만 사용하신다. 처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화장품을 사러 백화점에 갔던 날, 그녀는 엄마의 카드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수증에는 그녀가 아이들에게 지출하는 한 달 학원비보다 더 많은 금액이 찍혀 있었다. 팔십이 다 된 엄마가 주름을 방지해 주고 미백에 도움이 된다는 화장품을 몇 백만 원어치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간섭할 권리도 없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싸구려 화장품으로만 채워진 자신의 화장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차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오빠에게서 전화가 오니 당황스러웠다. 오빠는 안부 인사도 생략한 채 엄마 카드 내역에 이상한 금액이 찍혔으니 당장 확인해 보라고 명령을 했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진 후 엄마의 카드 내역을 문자로 받아서 감시하고 있던 오빠가 몇 백만 원의 지출 내역이 뜨니 그녀에게 대뜸 전화한 것이었다.
그녀는 엄마의 소비 패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오빠는 화장품에 몇 백만 원을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엄마의 신용 카드를 뺏으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 10단계가 넘는 화장품을 매일 정성스럽게 바르는 엄마 모습에 짜증을 내던 그녀는 오빠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엄마가 엄마 돈을 쓰는데 오빠가 무슨 권리로 그러냐고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엄마와 차 한잔을 하면서 화장품이 너무 비싼 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 엄마는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가서 VIP 대접을 받고 환대를 받는 것이 좋아서 비싸다는 생각은 못 했다고 하셨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외로웠던 것이었다. 외로워서 자신을 환영하고 대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러 분기마다 백화점에 가셨던 것이었다. 이런 인연이 십 년 넘게 이어지니 언젠가부터 화장품 코너 담당자가 아들 딸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명절이면 선물을 보내주고 때마다 다정한 안부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들이 자식보다 살가운 존재가 되어서 엄마를 외롭지 않게 지켜주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화장품을 산 것이 아니라 다정함과 따뜻함에 대해 가격을 지불했던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차마 엄마에게 그만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셨던 그녀의 엄마는 정년 퇴직하실 때까지는 자신을 위해 돈을 써 보신 적이 없으셨을 것이다. 60이 넘어서야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되셨고 연금도 풍족하게 나왔으니 엄마의 씀씀이는 커져만 갔다. 그렇게 이십 년 동안 마음대로 사셨는데 치매에 걸렸다고 이젠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팔십이 다 된 나이에 매일 화장품을 10단계씩 바르는 것은 말려야 할 것 같고, 엄마를 돌보지도 않으면서 엄마 연금을 탐내는 오빠에게는 화가 나고, 자식들은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데 쓸데없는 곳에 돈을 펑펑 쓰는 엄마 모습에는 짜증이 나고...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봤지만 쉽사리 답을 낼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 온전한 나의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나의 친구도 자신이 엄마처럼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노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남은 인생의 숙제인데 너무 풀기 어려운 숙제라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