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위안
언제나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나에게 ‘점을 본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점을 통해 불확실한 현실 속 확실한 답을 얻어 내 불안을 잠재우려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용하다는 사주 집과 타로 집을 찾아다닌다.
뭐, 늘 시원한 답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정말 원하는 답을 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제가 치매에 걸릴까요?’라는 질문에 ‘넌 절대 안 걸려!’라고 확신을 주기도 하고, ‘제가 올해 취직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올 가을 지나서 취직해!’라고 답을 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시원시원한 답이 늘 맞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치매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는 다 살아봐야 알지 않을까? 하지만 가을 지나 취직한다거나 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사항은 종종 맞는 경우도 있다.
“나보고 절대 자시(23:00~01:00) 지나서는 술을 마시지 말래. 그 시간에 술을 마시면 나한테 귀신이 들어와 헛소리를 하게 되고, 그래서 망신살이 뻗친데. 그리고 사주에서 내가 작은 나무인데 뿌리내릴 곳이 땅이 아니라 바위라는 거야, 사주상. 그래서 내가 인생 사는 내내 힘들데. 근데 정말 그렇지 않냐? 또 내가 심혈관이랑 간이 안 좋데. 근데 우리 집안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유전적으로 좀 높거든. 정말 잘 맞추더라고."
얼마 전, 사주를 보고 온 나는 친한 친구에게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친구의 반응은 냉정했다.
“아니, 밤 11시 지나서 술 마시면 누구나 다 개 되는 거 아냐? 그럼 헛소리 하겠지, 그럼 망신살 뻗치겠지.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 다 붙들고 물어봐라. 본인 인생 안 힘들다는 사람 있는지. 그런 소리는 나도 하겠다. 그리고 심혈관 질환이 사망원인 1위 거든."
"어...... 그러네, 쳇."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주풀이의 많은 부분이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건 사주 풀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우리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의 사주야 다르겠지만, 다들 힘들고 아프고 대부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면 헛소리를 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굳이 사주나 타로를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릴 때 상담소나 병원 대신 소위 점집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솔직히 취직을 할지 안 할지, 병에 걸릴지 안 걸릴지를 점으로 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전혀 논리가 없는 것임에도 말이다. 그것은 내 노력만으로는 100% 인생이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취업 시장엔 나보다 우수한 경쟁자는 있기 마련이고, 매일 운동을 하고 건강식을 챙겨 먹어도 10년 후 20년 후 치매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 말고, 초자연적인 어떤 힘으로부터 가끔은 위안과 확신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