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by 티치미

특별히 이 일을 직업으로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이제는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집 가까운 회사에 인턴 자리를 구했다. 대학시절 지옥철을 타며 강 건너 장거리 출퇴근을 경험했던 내가 생각한 일터의 최우선 조건이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인 내게 당시엔 모든 일이 생소했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해 온 일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소하다.


나는 강의안을 만드는 일을 한다.


10년이 넘게 한 직장에 있으면서 여러 부서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직업은 강의를 만드는 것이다. 강의안을 만든다고 하면 내가 강사나 교수쯤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직업을 말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왜 강의안을 강사가 직접 안 만들어요?"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는 경영자 대상의 트렌드 강의나 B2B 교육을 주 사업으로 했는데, 사내 강사 누구라도 그 내용을 강의할 수 있도록 표준안을 만들었다. 이를 테면 기성 강의안인 것이다.


누구나 사이즈 맞는 옷을 골라 입 듯. 누구나 강의할 수 있도록 강의안을 만드는 것이 오랜 기간 내 일이었다.


강의안을 만드는 일은 재미있었다. 아직도 처음 만든 강의안을 기억한다. ‘디자인 경영'에 관한 강의였는데 지금은 누구나 아는 개념이지만 당시엔 단어조차 생소했던 터라 그 의미부터 어떻게 경영에 적용할 수 있을지 국내외 사례를 찾아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만든 장표 중 하나를 나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모토로라의 디자인 경영을 설명하는 장표였는데,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 경영 실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자정을 넘겨 고민하다 그래프 하나를 그려낸 후에 느꼈던 보람과 희열은 여태껏 같은 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연히 재미를 붙인 회사를 8개월 만에 그만두고 예정대로 대학원 진학했다 (6개월 인턴직이었던 관계로). 그리고는 2달 만에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학교엔 그런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를 쫓아 시작한 일이 지금은 "일"이 되어 "재미" 따위는 잊은 지 오래지만.. 그땐 그랬다.


당시 R&D라는 이름으로 팀이 처음 생겼고, 팀장님도 이런 일이 처음인 관계로 시행착오 투성이였지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즐거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희열로 가득했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인턴들에게 늘 이야기했다. 그땐 뭘 모르는 것이 당연했던 때라 부담도 없고 참 재미가 있었다고. 그 이후 그런 시절이 다시는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여하튼 지난 10여 년 간,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이 자신의 컨텐츠(강의)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이 글을 써내려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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