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근 Oct 06. 2021

산골집

오늘은 옥경이 이모가 산골집으로 떠나는 날이다.


나는 이모의 이름이 참 좋다. ‘옥경’이란 이름은 불렀을 때 그립고 정겨운 향기가 나는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옥경이 이모가 참 좋다. 정말로 그 향기가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당신의 마음 가까운 친구를 이모로 부르게끔 한다. 그런 옥경이 이모가 오늘 떠난다.


원래는 다음 달에 떠날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오늘이어도 괜찮았다. 일단, 산골집이 늦지 않게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새집의 입주 예정일에 딱 맞춰 기존에 살던 아파트의 계약을 끝내 놨었다. 집이 제때 완성되지 않았더라면 옥경이 이모는 엄한 데에서 몇 밤을 보내야 할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옥경이 이모의 안이한 허술함에 혀를 차면서도 꺼내 놨던 여분의 침구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모의 남편 분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오랫동안 아파 온 분이었다. 최근 들어 병세가 심해지는 바람에 응급실을 거쳐 다시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하다고 했고 아저씨는 이 주 뒤에 퇴원해야 했다. 바로 이 무렵 옥경이 이모 부부는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산골에 새 집터를 놓았다. 그곳은 부부가 들어가 살기로 한 집이었다.


그러나 산골집이 다 지어지기 전에 아저씨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람의 발길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아저씨는 떠나기 며칠 전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그리고 곁을 지키던 이모를 나지막이 불렀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저씨가 옥경이 이모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과 맞바꾼, 사랑에 대한 마지막 정의였다.


옥경이 이모에겐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 중이었다. 아들은 아저씨가 곡기를 끊으려 할 즈음 한국에 들어왔다고, 미국에서 만난 한인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고 입원실에 갔다 온 어머니는 말했다. 어머니는 그 아이가 참으로 밝고 야무지다며, 정말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아저씨의 생명은 조금씩 꺼져 가고 있었지만 아들의 생명은 또 하나의 생명과 더불어 더욱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저씨가 떠난 뒤 아들은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아들의 집은 산골집보다 더 깊고 먼 곳에 있었다. 그러나 삶의 길이 이모에게는 산골집에 있었고, 아들에게는 미국의 집에 있었다. 길이 달랐을 뿐 그 이유는 다르지 않았기에 옥경이 이모는 아들의 먼 길을 막지 않았다. 이모는 아들이 그곳에서 여자친구와 결혼하길 바랐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아저씨가 떠났을 때 이모와 딸은 함께 울었다고, 아저씨를 화장했을 때 딸은 이모의 눈물까지 대신 받아서 깊이 울었다고 화장장에 갔다 온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이모의 딸을 본 적이 없었지만 분명 같은 향기가 나는 사람일 것이다. 딸은 서울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었다. 옥경이 이모는 딸의 그림 실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머니도 옥경이 이모 딸의 그림 한 점을 집에 걸어 두고 싶어 했다.


이모의 딸은 서울에 집을 얻어 혼자 살고 있었다. 딸에게는 서울의 집이 삶의 길이었다. 이모의 집과 딸의 집은 서로 다른 곳에 있었으나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지어진 것임은 똑같았다. 이것 또한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 아니, 딸의 마음속에는 이미 밑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이모의 딸이 훗날 그 그림을 완성한다면, 나도 한 점을 부탁하고 싶다. 하나는 옥경이 이모의 산골집에, 또 하나는 내 어머니 집에, 그리고 또 하나는 훗날 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집에 걸어둘 수 있게.


방금 전 옥경이 이모가 산골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깊고 먼 길이었지만, 무사히.

매거진의 이전글 흑백 사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