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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Sep 22. 2021

두 과학자의 사람 이야기

제 목 :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원 제 : Einstein’s Dice and Schrodinger’s Cat

부 제 : 상대성이론과 파동방정식 그 후, 통일이론을 위한 두 거장의 평생에 걸친 지적 투쟁

지은이 : 폴 핼펀

옮긴이 : 김성훈 (감수 : 이강영)

출판사 : 플루토

출간일 : 2016년 12월 20일 (원서 2016년)

사 양 : 500쪽 / 152ⅹ225mm



“내 이야기를 이해할 사람은 자네밖에 없다네.” 어느 날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면, 그것도 스승으로 모실 만큼 자신이 줄곧 믿고 따르던 사람에게서 받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황홀할까? 만약 당신이 고대의 철학자인데 소크라테스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당신이 중세의 극작가인데 이 편지의 발신인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면? 당신이 현대의 물리학자이고,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상대성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을 열어젖힌 불멸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면?


그런데 실제로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이 애틋한 고백을 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에르빈 슈뢰딩거이다. 물리학의 한 획을 긋는 파동 방정식을 구축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그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애칭의 사고 실험을 고안하여 더 유명한 물리학자. 20세기의 두 위대한 과학자는 1924년부터 평생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개의 큰 꿈을 향한 기나긴 탐구 여정을 함께하는데, 하나는 우주의 모든 근원적 힘을 단일한 이론으로 통일하겠다는 꿈이었고, 또 하나는 우연과 확률의 양자 역학을 신봉하는 무리들에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결정론의 밝은 빛을 비춰 주겠다는 꿈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그 꿈을 이루고자 일생을 바쳤던 두 거장의 지적 분투와 그 사이에서 싹트던 지적 우정을 그려 낸다.


둘 간의 편지에서 자주 언급되기로,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특히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할 때의 ‘신’은 성경이나 불경에 쓰인 종교적 신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원인과 결과를 아우르는 총체로서의 상징적 신이다. 스피노자의 자연관에서 우연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양자 역학의 성과 그 자체를 통째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대신 우연과 확률의 틀로 미시 세계를 서술하는 양자 역학은 그에게 결코 ‘완전한’ 이론이 될 수 없었다. 단지 인간이 가진 지식이 부족하여 우연인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모든 퍼즐을 찾아낸다면 우리는 우연의 안개가 걷힌 완전무결한 인과의 세계를 맞이하게 되리라.


슈뢰딩거 또한 철학적 사유를 자신의 과학 활동에 투영했다. 존경하는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스피노자 철학관에도 익숙해졌을 테지만, 슈뢰딩거는 그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더 빠져들었다. 특히 쇼펜하우어 철학이 바탕을 두고 있는 동양의 고전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연구 분야를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바꿀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동양 철학의 총체성 ─ 모든 것은 하나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은 슈뢰딩거를 세계를 우연적이고 비연속적인 개념으로 기술하는 데 찜찜함과 거북함을 느끼도록 이끌었다. 막스 보른이 자신이 구축한 파동 방정식을 미시 세계의 확률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하자 슈뢰딩거는 그의 해석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관에 더해 아인슈타인과 일군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우주의 모든 힘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일 이론으로 길을 나섰다.


안타깝게도 두 거장의 지적 분투는 실패했다. 아인슈타인에게 모든 물리적 작용이 인과율에 따라 완전하게 들어맞는 이론이란, 자신이 뉴턴의 고전 역학을 깨부수고 구축했던 중력의 세계를 이전에 제임스 맥스웰이 우아하게 하나로 합쳐 놓았던 전자기력의 세계와 ‘아름답게’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이때의 아름다움이란 수학적으로 어떤 미지의 변수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물리 공식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는 순수 수학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었는데, 문제는 여러 번 통일 이론을 발표할 동안 새로이 검증된 과학적 사실들을 자신의 연구에 반영하지 않은 그의 고집에 있었다. 결국 일반 상대론 이론 이후에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은 업데이트되지 않은 수학 공식을 이리저리 굴려 보는 데 가까웠다. 아인슈타인은 언론계에선 여전히 슈퍼스타였지만 과학계에서는, 슈뢰딩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조했듯이, “외로운 늙은이” 신세였다.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보다는 조금 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전성기 이후 밝혀진 핵력이나 소립자들의 존재를 도외시했지만, 슈뢰딩거는 그러한 성과들을 이론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년에 다다를수록 아인슈타인은 실험적 예측을 거의 포기한 듯한 반면 슈뢰딩거는 그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실험적 예측을 위해 그가 제시한 증거가 아주 잘못됐다는 점이었다. ‘일반 통일 이론’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이론을 입증할 증거로 그는 지구 자기장의 특정한 변칙적 현상을 지목했는데, 그것은 이미 지구물리학자들에 의해 충분히 설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론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수십 년도 더 된 과거의 자료를 가져다 썼다. 두 거장이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고 발버둥을 칠수록 신은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는 듯 보였고, 고양이는 죽은 동시에 죽지 않은 상태로 상자 속에 고이 누워 있는 듯 보였다.


그렇기에 둘이 주고받던 지적 우정은 더욱 소중했다. 둘은 인과론의 세계를 증명하고 통일 이론을 구축하는 여정에서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료였다. 새로이 고안해 낸 이론이 있을 땐 함께 머리를 맞대어 검토했고, 막다른 골목을 맞닥뜨렸을 땐 건설적인 비판으로 길을 열어 주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도 사실은 슈뢰딩거의 독자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그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었던 ‘화약의 역설’과 ‘상자 속 공’ 사고 실험을 적절히 혼합하여 확장한 것이었다. 화약은 우라늄 붕괴에 따른 독극 물질 방출기로, 생명이 없는 공은 귀여운 고양이 ─ 슈뢰딩거가 일상의 친숙한 존재에 비유하길 좋아하고 평소에 동물을 무척 사랑했다고 하지만, 왜 굳이 고양이여야만 했는지 그가 직접 밝힌 기록은 없다 ─ 로 바뀌며 양자 역학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고 실험으로 발전하였다. 슈뢰딩거는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고, 이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답장은 둘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자네가 든 고양이 사례는 오늘날의 양자 이론이 갖고 있는 특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네.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둘 다 포함되어 있는 파동 함수는 한마디로 실제 상태에 대한 기술이라 생각할 수 없단 말이지. (279~280쪽)


두 위대한 과학자의 편지라고 하여 그 속에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방정식들만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지적 우정은 11년의 나이 차를 무색하게 만드는 인간적 우정으로 나아갔다. ‘나를 이해할 사람은 자네밖에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문장은 편지의 상투적인 의례가 아니라 정말로 그의 진심이 꾹꾹 담긴 말이었다. 슈뢰딩거 또한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과 대화를 주고받고 뜻을 함께한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휘몰아친 세계 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그리고 점점 커져만 가는 과학계의 외면 속에서도 둘은 서로의 삶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따뜻하게 응원했다. 그러다 슈뢰딩거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줘야 하는 압박에 의도치 않게 아인슈타인을 자극하고 말았는데, 언론의 과장된 보도마저 더해지는 바람에 아인슈타인이 격노하여 무려 3년간 편지가 끊기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헤어졌다 서로의 인과론적 운명을 깨닫게 된 연인처럼 그 둘은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돌아갔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핵심은 주류 과학계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말았던 두 물리학자의 지적 노쇠를 조롱하려는 데도,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두 과학자가 주고받았던 편지 속에서 어떤 은밀한 가십거리를 찾아내려는 데에도 있지 않다. 이 책이 그려 내는 그림의 중심점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그리고 에르빈 슈뢰딩거라는 두 ‘사람’에 찍혀 있다. 과학자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거대한 이름 뒤로 혹은 유명한 과학적 상징 뒤로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으로서의 삶 ─ 성공하고 또 실패하는, 좌절하고 또 희망하는, 분노하고 또 사랑하는 보통 인간의 생애 흔적까지 선명하고 세심히 그려 내는 일. 이 책은 그 방대하고 지난한 일을 충분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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