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덟 시와 아홉 시 사이
요즘은 설거지를 마치고 여덟 시쯤 늦어도 아홉 시 전에는 집을 나와 밤산책을 간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의외로 그 시간에 나와 걷는 사람들이 많다. 땀을 내며 뛰는 젊은 남자부터 닮은 운동복을 입고 나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신혼부부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음을 맞추는 중년의 부부들을 만난다. 레깅스 위로 나이키 양말을 겹쳐 신은 젊은 여자들의 손에는 서브웨이 비닐봉지가 들려있는 확률이 높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합치면 자기 관리라는 말이 되는데 고단하고 귀찮은 저녁 시간을 열고 나와 운동을 하고 늦은 저녁끼니로 샌드위치를 선택한 그녀들이 똑똑하고 예뻐 보인다. 정말 운동이 절실히 필요해서 각오를 단단히 한 사람처럼 이틀 열심히 뛰던 장년의 남자 손에서 사흘째 결국 맥주 네 캔이 들린 편의점 비닐봉지를 발견하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하며 속으로 웃게 된다. 그래 뛰었으니 마셔도 되는 거 아닐까.
낮의 해가 다 식은 밤의 공기는 정말 산산하고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다만 가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이 든 남자들을 만나는 것은 좀 무서웠다. 그런데 그런 사내들의 손에는 공통적으로 까만 봉지가 들려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로는 다 괜찮아졌다. 대개 그 까만 봉지에는 기름 냄새를 풍기는 동네 치킨집 후라이드가 들어있었다. 그도 아니면 바나나우유가 혹은 새우깡이 익숙하고 다정한 실루엣을 드러내며 사내의 비틀거리는 귀갓길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동네 한 바퀴 산책길은 아파트담으로 이어져있고 그들이 그 아파트의 불 켜진 어디론가 들어가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될 것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놓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