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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ug 07. 2022

신랑이 문어를 잡아왔다.

호주의 푸른 하늘이 담긴 맛!

낚시에 대한 신랑의 사랑은 단번에 이민을

결정할 정도로 간절한 것이었다.

긴 코비드로 하늘 길이 막혔듯 바닷길도 막혔었다.


한때는 귀한 대접을 받던 통통배도 공장에 오래 정박해두자 먼지만 소복이 쌓이며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지난달 신랑은 큰 결심을 했는지 Gumtree(호주 중고 사이트)에 올려 배를 팔았다.

  

나는 너무 좋았다.

이 참에 제발 하나씩  정리돼 가라지에 쌓여있는 낚싯대며 장비들이 속히   좀 처분되기를 두 손 모아 응원했다.


그런데 나의 소박한 바람은 신랑의 야욕에 의해 와장창 깨졌다. 그는 중고로 판매했던 배의 무려 세배가 넘는

가격의 큰 배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순순히 배를 정리할 때 그의 검은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순진함의 결과였다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도 이미 때는 늦은 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자 이가 으스러질 것 같은 화가

내 뒷골을 잡아당겼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신랑이 없었다.

그에게 전화를 거니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닷가에는 절대  혼자 가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아주 가볍게 깬 것이다.


왜 그랬냐고...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을 흔하게 봤으면서

왜 위험하게 혼자 가냐고 쏘아붙였다.

거기다 피싱 가방까지 도둑맞았다는

말을 듣자 나는 눈을 질금 감았다.


숨을 고르고 화를 꿀꺽꿀꺽 삼켜보아도,

그가 잡아 온 싱싱한 문어를 보고도,

좀처럼 위로가 되질 않았다.


잠시 앉아 있었다.

그때 그가 보낸 카톡 사진이 핸드폰 모니터를 비췄다.


그 몇 장의 사진을 보자

마음이 울렁거렸다.



세상엔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무작정 돌진할 만한 행복의 순간이 있다.


그래,

저 하늘이라면 저 하늘을 눈 속에 품었다면

혼자서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너무 좋아서 가슴이 요동치는 맛.

문어 다섯 마리랑 피싱 가방이랑 바꾼 하늘 맛.


저 푸르름에 눈이 부시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오직 마음에 기대어 볼 수 있다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오늘 신랑이 주워 담은 것은 일터에서

혹은 잠든 순간에도 흐뭇하게 꺼내볼 수 있는 

최고의 찰나일지도 모르겠다.


쫀득거리는 문어를 초장에 찍어 먹는

신랑의 머리에서 비릿한 바다향이 났다.  

호주의 푸른 하늘이 담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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