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별빛 Aug 07. 2022

신랑이 문어를 잡아왔다.

호주의 푸른 하늘이 담긴 맛!

낚시에 대한 신랑의 사랑은 단번에 이민을

결정할 정도로 간절한 것이었다.

긴 코비드로 하늘 길이 막혔듯 바닷길도 막혔었다.


한때는 귀한 대접을 받던 통통배도 공장에 오래 정박해두자 먼지만 소복이 쌓이며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지난달 신랑은 큰 결심을 했는지 Gumtree(호주 중고 사이트)에 올려 배를 팔았다.

  

나는 너무 좋았다.

이 참에 제발 하나씩  정리돼 가라지에 쌓여있는 낚싯대며 장비들이 속히   좀 처분되기를 두 손 모아 응원했다.


그런데 나의 소박한 바람은 신랑의 야욕에 의해 와장창 깨졌다. 그는 중고로 판매했던 배의 무려 세배가 넘는

가격의 큰 배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순순히 배를 정리할 때 그의 검은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순진함의 결과였다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도 이미 때는 늦은 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자 이가 으스러질 것 같은 화가

내 뒷골을 잡아당겼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신랑이 없었다.

그에게 전화를 거니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닷가에는 절대  혼자 가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아주 가볍게 깬 것이다.


왜 그랬냐고...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을 흔하게 봤으면서

왜 위험하게 혼자 가냐고 쏘아붙였다.

거기다 피싱 가방까지 도둑맞았다는

말을 듣자 나는 눈을 질금 감았다.


숨을 고르고 화를 꿀꺽꿀꺽 삼켜보아도,

그가 잡아 온 싱싱한 문어를 보고도,

좀처럼 위로가 되질 않았다.


잠시 앉아 있었다.

그때 그가 보낸 카톡 사진이 핸드폰 모니터를 비췄다.


그 몇 장의 사진을 보자

마음이 울렁거렸다.



세상엔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무작정 돌진할 만한 행복의 순간이 있다.


그래,

저 하늘이라면 저 하늘을 눈 속에 품었다면

혼자서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너무 좋아서 가슴이 요동치는 맛.

문어 다섯 마리랑 피싱 가방이랑 바꾼 하늘 맛.


저 푸르름에 눈이 부시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오직 마음에 기대어 볼 수 있다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오늘 신랑이 주워 담은 것은 일터에서

혹은 잠든 순간에도 흐뭇하게 꺼내볼 수 있는 

최고의 찰나일지도 모르겠다.


쫀득거리는 문어를 초장에 찍어 먹는

신랑의 머리에서 비릿한 바다향이 났다.  

호주의 푸른 하늘이 담긴 맛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에게 다정한 동물원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