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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Jun 28. 2022

'동물에게 다정한 동물원은 없다'

전 세계를 강타한 이상기후로 멜버른은 지금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며칠째 연이어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 없던 빗방울이 툭툭 창문을 두들기자

세상 편한 키즈카페에서 아이들이나 놀리고 수다나 떨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뜨끈한 전기장판에 누워 이불을 턱 끝까지 말아 올리자

귀찮다는 마음이 온온하게 몸을 녹였다.


그때, 아홉 살 된 막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 묻는다.


" 엄마! 동물원 안 가? 

" 글쎄, 가면 추울 텐데,  비도 조금씩 내리고 

............. "

" 왜? 꼭 가고 싶어?"


이불 밖을 삐져나와 까딱되는 엄지발가락을 멍하니 주시하던 아이가 실망한 눈빛으로 말한다


" If you don't  do it , nothing happened "


나는 침대 용수철의 반동을 한쪽 다리로 세차게 밀어내며 벌떡 솟아올랐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가자! 그냥 가자!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처벅처벅 비를 뚫고 북쪽으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Melbourne Zoo는 Parkville에 위치에 있다.


동물원에 들어서자 날씨 때문인지 평소에 비해 비교적 사람이 없었다. 비도 드문드문 내리고, 손이 시릴 정도의 싸늘한 공기가 동물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게 했다.


저 멀리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몸짓이 보인다.

큰 머리 갈퀴를 보니 사자가 분명한데,

밀림의 왕의 위엄과 날카로운 포식자의 눈빚은

귀여운 고양이추락한 지 오래된 듯하다.


날씨가 쨍하고 화창할 때보다 동물들이 더 많이 필드에

나와 있었다. 기린도 코끼리도 오랑우탄도 오히려 춥고

비 오는 오늘 같은 날 더 활기를 띠며 사람들 눈앞에 

모습을 비추었다.


왜 그럴까! 평소 동물원에서 동물 찾기는 큰 울타리 안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거였다.  

오늘은 선심 쓰듯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뭐지,  의아해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아,  오늘 유독 사람이 없구나.

늘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플래시 세례 속에 지쳤을게 뻔하다. 그런 동물들에게 오늘은 모처럼  찾아오는 휴식 같은 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맑고 화창한 날이 동물들에게는

최악의 날이고,  불쾌지수 높은  비 오는 날이 유일하게 동물들이 쉼을 허락받는 여유로운 날이라는

씁쓸하다.




나는 한참을 동물은 절대 자살할 수 없다고 믿었다.

생존본능이 강한 동물은  인간의 실존주의희망에서 비롯된 삶의 가치를 절대 느낄 수 없으며,

아무리 아이큐가 높은 영장류라도 삶의 의지를 스스로 내려놓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간단히 말해 먹이를 앞에 두고 굶어 죽을 수 있는

동물이 어디 있겠냐 라는 주장이 매우 확고했다.


그런데 지능이 높고 삶에 애착이 강한 돌고래가 우울증으로 바다에서 해안으로 돌아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례는 이를 뒤집는 증거가 됐다.

또한 어미를 잃은 침팬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한 달여 만에 어미를 따라 숨지는 사건은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등장한

TV 다큐멘터리에 의해 그대로 전파되었다.


이로써 동물들도 인간처럼 우울증을 앓고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학설에 확실한 힘이 실렸다.


사육당하고 길들여져 본능이 퇴화된 동물원의 동물들은

어떨까.  삶을 내려놓으려는 선택도 의지와 감정에

온기가 돌아야 가능한 일은 아닌가


사냥을 하던 원시의 인간은 자연 앞에서 너무 연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흙이 주는 생명력을 믿었고

동물과 공존했으며 서로 생존을 위한 생태계의 본능적 질서에 순응했다. 쾌락과 유희에 의한 죽음은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져본다



같은 영장류인 우리가 이래도 될까!

동물을 동물이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만든 쇠창살 안에 가두고 합법적인 관람을 해도 되는 것일까!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타고난 야생의 본능을 거세받은 채

사람들을 향해 광대가 되어야 하는 동물들의 운명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사육사에 의해 돌봄을 받는 코끼리의

커다란 눈망울이 왠지 슬퍼 보이면서도

그림책에서나 본 동물을 직접 보고 까르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또다시 연회원 멤버십을 끊는

이중적인 내가 오늘은,  좀 많이 미워진다.


인간이기에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나의 오만에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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