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트인바다 May 03. 2020

A급 남자와 산다는 것

결혼은 결국 제 눈에 안경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전 섹시한 고목나무 같은 남자요.

 이 말인즉슨, 겉모습은 훤칠한 키와 넓은 어깨를 자랑하면서도 속마음은 뚝배기처럼 뜨거운 열정과 진중함을 지닌 그런 남자-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던 것. 물론 이런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겠지.


 하지만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외모,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보다 큰 키, 넓은 어깨, 기다란 손가락에서 섹슈얼한 느낌을 받고는 했지만 외모는 동그랗든 네모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실제로 못난 얼굴이든 잘난 얼굴이든 오래 보면 그 안에 다 각자의 매력이 있고 외모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기 마련이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밑밥을 정성 들여 깔아 두는 이유는 남편 J군을 보고 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 J군에게는 콧대가 치솟을까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우리 팀 사람들은 남편 J군을 A급 남자라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부른다. 이는 점심시간에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커플의 외모 상관관계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나의 망언이 발단이었다. 단순히 외모로만 등급을 나눴을 때, 보편적으로 남자보다 여자의 외모가 한 단계 더 높다는 나의 말에 발끈(?) 혹은 억울했던 남자 과장님은


근데 너네 커플은 남자가 A급이잖아


라고 말했고, 어쩌다 보니 그 날 이후 나는 B급 여자, 남편은 A급 남자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여자가 더 많이 꾸미고 외모에 관심이 많으니 남자보다 외모적으로 나은 경우가 많다는 말이었는데. 뭐가 됐든 나의 B급설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편 칭찬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또 사건의 발단은 나의 망언에서 비롯되었으니 자업자득이라 생각했다.



 

그럼 정말 결혼을 하는 데 있어 외모는 중요할까?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잘생긴 남자와 사는 느낌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보았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그러나 은근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댓글들은 나를 묘하게 웃게 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싸우다가 얼굴을 딱 봤는데- 화난 얼굴도 섹시한 거 있죠.'
 '결혼 10년 차인데 아직도 가끔 얼굴 보면 설레요.'
 '못생긴 남자가 바람피우면 더 화가 날 것 같은데, 잘생긴 남편이 바람피우면 슬프지만 이해는 될 것 같아요.'
'다른 특별한 건 없었는데, 2세가 태어나고 제 선택이 옳았다고 느꼈어요.'

 댓글의 진의 여부를 떠나 다들 여전한 콩깍지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아직 신혼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으나, 결혼 후 약 7~8kg쯤 몸무게가 늘어 연애 때의 모던함보다 둥글둥글한 귀여움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그를 보는 내 눈에 여전히 애정이 가득한 것을 보았을 때, 결혼에 있어 외모는 역시 제 눈의 안경인 듯싶다. 까만 얼굴도, 조그만 코도, 쌍꺼풀 없는 눈도 사랑이 있기에 모두 잘생겨 보이는 마법.


 만약 어느 날 내 남편이 밥만 먹는 식충이처럼 느껴진다면, 내 사랑이 부족해졌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겠다. 개구리 왕자와 결혼한 공주든 레드 슈즈를 신은 뚱보 공주와 결혼한 왕자든 결과는 늘 내면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콩깍지를 말하지 않던가. 그 언젠가 나의 심장을 콩닥이게 만들고 나를 로코(로맨스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던  남편의 외모는 사실 그를 보는 내 마음가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을 뿐. 나의 콩깍지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영원히 A급 남자와 사는 방법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꼬리가 긴 남자, 뚜껑을 닫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