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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트인바다 May 24. 2020

양파 같은 당신

오만과 편견, 버리면 버릴수록 깊어지는 관계.

 시청률 28.4%, 장 안의 화제였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불륜녀 여다경에게 매우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넌 아직 이태오를 몰라."
                         -<부부의 세계> 지선우 대사 중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본처만이 알 수 있는 진실이라는 듯, 확신에 찬 지선우의 말은 내심 불륜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여다경의 마음을 쉽사리 뒤흔든다. 그리고 굳건하다고 믿었던 관계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바스락 부서질 만큼 연약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온전히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약 2년 2개월의 시간을 거쳐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간 함께 나눈 대화만 해도 책으로 엮으면 어느 대하소설 못지않을 텐데.. 그럼에도 결혼은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발견하는 일인 것 같다. 이것 참, 양파 같은 당신.


 나는 남편 J군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왔다. 주변 지인들 중 배우자의 성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가에 반려동물을 두고 와 속상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와 남편 J군 모두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 않았기에 누구 한 명 속상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이기적이고 정이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반려동물이 내게 주는 무조건적인 애정이 부담스럽다. 그 애정에 상응하는 무한한 사랑과 책임감을 가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니 난, 헤어지는 게 싫어서
안 키우는 건데.

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때 강아지를 꽤 오래 키운 적이 있었고, 그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너무 슬펐던 기억이 강해서 그 이후로는 키우고 싶지 않아졌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고 오만하게도 남편 J군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단정 지었다. 이런 경우는 또 있다.


 나는 남편 J군이 꽃이나 식물을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 역시 '예전의 나'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꽃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꽃에 큰 감흥을 못 느끼던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꽃(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식물과 자연?)이 좋아진 케이스다. 그러나 화무는 십일홍이라. 지금도 꽃을 받을 때는 사진도 찍고 SNS에 자랑도 하고 화병에 꽃꽂이도 하며 기뻐하지만 시들어진 꽃에는 금세 흥미를 잃고 방치해두기 일쑤였다.


 이렇게 시드는 것 보면
불쌍하지 않아?


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의 무관심 속에 말라가는 식물에 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바스락거리며 떨어진 잎사귀를 주으며 내게 선물 준 사람의 성의를 말하는 그를 봤을 때도, 나는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반려동물을 안 키우고, 꽃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나와 행위는 같았지만 이유는 달랐다. 함께 살면서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 나의 편협한 사고로 누군가를 정해진 틀에 넣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나의 섣부른 단정이 "안 봐도 비디오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당신이 그렇지 뭐" 등 이런 식의 가시 돋친 말을 부르고, 대화의 단절을 부르고,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다 안다는 오만함과 그로 인해 갇혀버린 나의 편견을 버리면 버릴수록 관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할 산들을 무사히, 또 건강하게 넘기기 위해서 의식적으로라도 상대방을 단정 짓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상대방의 양파 속이 설령 내가 아는 하얀색일지라도, 다시 껍질을 벗겼을 때 어떤 색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한다.  
-영화 <오만과 편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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