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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Nov 06. 2019

민박집 사장님의 칭찬을 받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장난치고 싸우기만 하던 아이들이 왠일로 칭찬을 받았다.

 ** 실수로 글이 지워져서 다시 올립니다.


 지난 겨울 자동차로 스페인의 톨레도까지 여행을 했다. 마드리드에 머물렀던 연말연초의 3박 4일 동안 민박집에서 숙박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할 때 부킹 닷컴을 이용해 호텔이나 아파트를 예약한다. 하지만 파리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는 민박이 나을 때가 있다. 작년 봄 파리를 갔을 때도 민박을 이용했었는데, 비용이나 위치가 호텔보다 만족스러웠다.      

 

 민박집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민박에는 우리 가족 외에 4명의 대학생이 머물고 있었다. 우리 가족과 대학생들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으로 가기 전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소란 피워서는 안 되고, 스스로 밥을 떠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만 7살, 5살이 한 달 남짓 지났을 때였다.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속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결코 얌전한 편이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장난친다. 절대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지 않는다.      


 독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나칠 정도로 얌전한 독일 아이들과 비교되는 우리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 이에 관하여 <독일 할머니의 비웃음을 사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톨레도의 전경

 아이들이 민박집 식사시간을 망치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만약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면 부모로서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작년 봄 파리에서 민박했을 때가 그러했다. 아이들은 식탁에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고, 주변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스스로 밥을 먹었다. 밥과 반찬에 투정하지도 않고 골고루 남김없이 먹었다. 아내와 나는 조금 거들어 주기만 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놀라우면서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민박집 사장님이 아이들을 칭찬했다.     


 “애들이 혼자 밥도 잘 먹고 정말 착하네요.”     


 나는 이런 칭찬을 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가 평생 처음이었다. 불과 7-8개월 전 파리의 민박집에서 부모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아이들이었다. 그 동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민박집에 머무는 동안 사장님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이 힘들 텐데도 엄마 아빠를 따라 여행을 잘 다닌다, 핸드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걸 보여 달라고 떼쓰지도 않는다, 여행 다니는 걸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여행 온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한국에서 여행 온 아이들은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 싫다고 떼쓴다는 것이었다.      


 사장님의 얘기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알지는 못한다. 아마 대부분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여행 온 아이들의 이야기는 괜히 하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박집에서 아이들이 보였던 태도는 놀라웠다. 민박집 사장님이 칭찬하지 않았다 해도 내 스스로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식사시간마다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아내와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민박집 사장님 얘기처럼 아이들은 불평불만 없이 여행하고 있었다.    

새해를 앞둔 마드리드의 밤거리


 아내와 나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조금 신비롭기까지 했다. 도대체 지난 몇 개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엄격한 독일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세워보았다. 아이들이 독일에 온 지도 1년 4개월이었으니 독일 어린이집과 학교의 교육을 받을 만큼 받았다. 우리 아이들 역시 독일 아이들처럼 얌전하고 착하고 고분고분한 아이가 된 것일까.     


 하지만 얼마 후 독일로 돌아가 빵집을 갔을 때 아이들은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쳤다. 어린이집 친구와 함께 있으니 장난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럴 때면 얌전하던 독일 친구들까지 같이 소란을 피운다. 오죽하면 독일 엄마들조차 자기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을 정도일까.     


 (여담이지만 독일 아이들은 얌전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있을 때면 태도가 급변한다. 시끄럽고 다혈질 적인 우리 아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들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떠든다. 독일 아이들의 얌전함은 그들의 기질이라기보다는 교육과 사회 환경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 이유다.)     


 아이들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끊임없이 웃고 떠들며 장난친다. 반면 유치원에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조용하게 밥을 먹는다. 유치원에서 보이는 모습을 집에서는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교육이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가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니면 아이들이 낯선 민박집의 환경과 사람들이 어색해서 기를 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리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민박집에서 머무는 3박 4일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 적응했음에도 처음의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더욱 고무적이었던 점은 숙소에서 가족들끼리 있을 때도 아이들이 아내와 내 말을 잘 들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낯선 환경의 논리는 아이들의 다른 모습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채거나 떼쓰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여행을 즐겼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이들은 여행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여행에서 그다지 즐거울 게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여행을 다니면 오랜 시간 차를 타야 한다. 3-4일에 500-700km를 이동하거나, 어떨 때는 이틀 연속으로 300-400km씩을 가야한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계속 걷는다. 우리 가족은 여행할 때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10km를 걷는다. 아이들에게 여행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큰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심미적인 기쁨을 얻기는 어렵다. - 얻는다 해도 순간뿐이다. - 오히려 아이들은 오랜 기다림과 실내의 답답한 공기에 금방 지쳐 버린다. 아이들은 톨레도의 오래된 굴곡진 거리와 주변 언덕 지형의 아름다움에 경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세고비아의 수도교를 본다 해도 그 건축물의 역사성과 놀라운 기술력을 실감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동네에 있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거나,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에서 물장난 치는 게 훨씬 즐겁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더 편하고 재밌다. 아이들은 여행 가는 걸 싫어했다. 그랬던 아이들이 어느 새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랐기 때문에 달라졌다는 것이다. 몇 개월 더 자란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주변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었다. 여전히 자제하지 못하고 장난칠 때도 있지만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자란 것이다.   

  

 아이들에게 여행이란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이다. 몇 개월 더 밥을 먹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다른 나라로 여행 가면 달라지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건물의 외관과 도시의 분위기를 느낀다.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싹튼 것이다.   

  

 부모로서 아내와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뻗어나갈 공간을 주면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나 있다. 때로는 부모로서 주의를 주고 다독일 필요가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이끄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시간이다.      


 둘째가 혼자서 밥을 먹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그때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만 5살이 되면 알아서 먹는다.” 실제로 둘째는 5번째 생일이 지나더니 더 이상 떠먹여 줄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처구니없는 장난을 친다. 제멋대로 욕심을 부리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서로 싸운다.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는 게 하루의 가장 큰 일 중 하나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동전을 홈에 끼워 넣고 돌리면 장난감이 나오는 뽑기를 하겠다고 난리다. 2018년의 마지막 날 나는 아이를 데리고 뽑기를 찾아 마드리드의 밤거리를 한 시간 동안 돌아다녀야 했다. - 뽑기를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공부하기는 끔직 하게 싫어한다. - 머지않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고 있다. - 언제쯤이면 철이 들고, 서로 양보하고,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알아서 공부할까라는 의문과 좌절감이 든다. 그럴 때마다 결국은 시간만이 유일한 답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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