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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Sep 25. 2020

메모장에서 꺼내온 나의 여름

당신의 여름은 안녕하셨나요 [마무드 에세이, 15]


 9월, 마지막 글을 쓴 지 5월로부터 4개월이 더 지났다. 봄이 끝나갈 때 글을 썼는데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 왔다. 예쁜 하늘, 좋은 날씨에 행복해하며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나의 여름을 꺼내어본다.

 

 글을 쓰지 않은 여름에 나는 삶을 살아내다 문득 글로 쓰고 싶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면 메모장을 켜서 적어두었다. 아무리 삶에 치여도 살아가기 위해 숨은 쉬고 살 듯, 글도 그저 써 내려가면 될 것을 나는 날개를 달고 멀리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생각들을 메모장에 꽁꽁 묶어두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 것도 같다. 이제야 나는 메모장에 갇혀있던 생각들을 주섬주섬, 꼬깃꼬깃한 주름을 손바닥의 열기로 펴가며 하나, 둘 써 내려간다.


 6월, 나의 생각 중 - 있는 힘껏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버텨서 얻는 것이라고는 고작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나의 자존심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터져 나온다.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 그렇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다.

 삶에, 사람에 많이 치였었다. 사람에 지쳐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기대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그리고 그게 고작 작디작은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니. 분명 6월의 나도 알았을 것이다. 그 얼마나 쓸모없는 오기일 뿐인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라도 무너지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마 그냥 무너져내리는 쪽을 택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길이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7월, 나의 생각 중 -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인연의 매듭을 자르고 언제 풀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만큼 느슨했던 인연을 단단하게 매듭지었다.

 사람의 인연은 참 알 수 없는 거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정작 내 피부로 느끼니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마음은 얼마나 부질없었고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나의 마음은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정확하게 보였다. 왜 늘 지나온 후에야 깨닫는 것인지 삶을 살아가는 요령에 여전히 무지한 내가, 무지함으로 인해 잃고 또 잃을 뻔했던 내가 안쓰럽고 애틋했다.


 8월, 나의 생각 중 -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먼지 털 듯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니 아직은 괜찮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고 나머지에 신경 끄는 것을 이제는 꽤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이것 역시 나의 오만이었음을 여름은 불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아직도 별 것 아닌 일, 사람, 말, 행동들에 온 신경이 다 쏟아져있었고 그 별 것 아닌 것들을 나에게  별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스스로 동굴에 걸어 들어가고 있을 때 내가 싫어하던 내가. 모순적이고 변덕스러운 내가 나를 구제했다. '사람도, 사람의 감정도 먼지가 아닌데 어떻게 먼지 털 듯 털어버릴 수 있을까. 그래도 사람이고 사람 마음인데 말이야.' 하며 언젠가는 지나갈 테니 지나가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비효율적인 시간들을 보내보자며 반항심을 불태웠다. 참 이상한 건, 그렇게 생각하니 또 금세 지나가버렸다.


 한 달에 하나의 생각들로 나의 여름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나는 충분히 아파하고 외로워했고, 즐거워하고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나는 늘 그렇듯 여름에도 역시 변덕스럽고, 모순적으로 살아왔다. 하기야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올해 여름이라고 다를 게 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변덕스럽고 모순적인 나의 곁에는 늘 그랬듯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들이 있어주었다. 너무 지쳐 포기하려고 할 때면 포기하지 말라며 없는 힘을 쥐어짜 내라고 닦달하는 게 아닌, 포기해도 괜찮으니 언제든 이리 와 쉬라며 두 팔 벌려 안아주는 그런 이들이 있었다. 나는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지만 내 옆에 있어주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꿋꿋하게 살아내고 싶다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또 다른 '나'를 위해 그렇게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며 다짐한다.


 너무 오랜만이지만 어색함을 무릅쓰고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여름은 어떠했는지, 성큼 다가와버린 가을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는지. 오랜만에 만났지만 만나면 언제나 기분 좋아지는 그런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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