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
어릴 쩍부터 난 내가 외향인인줄 알았다. 행사의 끝까지 남아있길 하도 좋아하고 나가면 들어갈 생각이 없는 날 외향인인줄 알고 살았었다.
봄. 복사꽃 하면 도원결의가 생각나고 삼국지가 생각나고 조자룡이 생각난다. 내게 삼국지는 조자룡이 사랑한 유비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천하통일을 위해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 중에 한결같고 충실한 사람. 나는 조자룡을 좋아한다. 그리고 조자룡을 알아봐 준 유비를 높이 산다. 믿음과 덕, 큰 그릇. 그것은 베풀기에 위대한 것이고 바라며 한 행동이 아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탈무드. 친구를 담보로 걸고 어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나 대신 친구의 목숨이 날아간다. 도주를 막으려는 인적 담보. 목숨을 담보 걸어줄 친구를 인생에 둘 수 있을까? 나는 내 옆에 그렇게 있어줄 친구를 둘 만큼 덕이 있거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고, 그래서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때론 이런 마음의 우정도 서로를 부담스럽게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적당한 선이라는 것은 아직도 어렵지만 적당하려고 노력한다. 중용이 정말 어렵다.
라라랜드. 여주가 꿈의 좌절로 도망치듯 고향에 가버리고, 남녀는 헤어진 듯 지내게 된다. 여주가 고향 가기 전 했던 모노그램을 본 관계자가 여주에게 오디션 제의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일생일대의 기회임을 느낀 남주가 여주를 찾는다. 정확한 주소도 없이 도시와 도서관 앞에 살았다는 대화의 기억만으로 밤새 클락션 울리는 장면. 대화는 서로에게 지층이 되고 화석이 되고 또 서로를 위하는 방법이 된다. 사랑뿐 아니라 우정도 관계도 그러한 것 같다. 대화가 삶의 힘이 된다. 기필코 소식을 전해야 하는 사명감에 상기된 얼굴의 남주. 잠에서 깬 당황스러운 여주와 여주의 아버지 그리고 소음에 화가 난 동네사람들. 요란스럽고 당황스럽지만 벅차오름 가득 찬 저녁을 사랑한다.
대화를 좋아한다. 이것저것 어느 정도는 얇게 끼어들 수 있는 지식은 있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한다. 유머는 없지만 진지함은 언제나 탑재되어 있어서 걱정 고민 언제나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가며 그럴 수 있는 친구는 점점 줄어든다. 이 시간이 괜찮을까? 아닐까? 바쁠까? 민폐는 아닐까? 생각을 하다가 차일피일 전화 타이밍을 고민하다 보면 연말연초가 된다.
5월 가정의 달. 감사함을 표현하는 달이다.
네 삶에 부담스럽지 않은 안부 전화를 어렵지 않게 걸기를. 삶을 핑계로 안부 묻기를 미루지 않기를.
별 거 없는 내 삶을 궁금해하는 안부 전화가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