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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

취향엔 금융이 더해져야 빛나

by 랑랑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소리 없이 바지 끝단이 젖고 있다. 이렇게 손시려울 시즌인가. 안 그래도 찬 손에서 냉기가 발산된다. 오른손이 왼손을 잡아주기 싫은 이 기분을 5월의 한복판에서 느끼고 있다. 하늘에서 서늘한 미스트를 뿌리고 있고 나는 습도에 지쳐 낮은 굽 구두를 신었는데도 오늘따라 힘이 많이 들어가는지 뒤꿈치가 까졌다. 따끔따끔.

비가 와서, 단화에 다리가 아파서, 자전거를 못 타서! 나는 조금 심통이 났다. 날씨가 좋았으면 자전거를 탈 수 있었는데...


2주. 5월 연휴로 8일 동안의 교육이 끝났다. 버스에 기차에 다시 버스로 왕복 5-6시간을 보내니 몸이 힘들었다. 몸이 안 좋으면 기관지로 온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목과 편도가 따끔거려서 힘들었다. 그동안 필라테스 요가 아쿠아로빅으로 쌓아온 근력을 소진한 느낌이다. 아직 시작도 전인데 이렇게 다 써버린 느낌 조금은 두렵다.


종종 어류의 겨울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잡아먹히지 않고 얼어 죽지 않게 정신줄을 놓지 않고 겨울잠을 자는 어류가 궁금했다. 꽁꽁 언 강바닥 수면 아래 죽은 듯 고요한 침묵 미세한 움직임 조금씩 열리고 닫히는 아가미. 겨울은 한참 지나 갑천의 물은 졸졸졸 잘만 흐르는데 겨울인 듯 이렇게 추우면 물고기들은 어떻게 사나 걱정이 되었다. 물속 세계에도 꽃샘이 오면 물고기들은 어떡하나. 나처럼 체온 낮은 물고기 한두 마리쯤 있을 듯할 텐데 때 늦은 걱정을 해보았다.


비가 오는 토요일. 내방 고객 숫자보다 출근해 있는 직원 수가 훨씬 더 많다. 나는 대표님 옆 깍두기 자리 앉아서 월요일 처음 만나게 될 내 자리를 상상해 본다. 내 컴퓨터와 내 서랍과 내 필기구들을 놓는 상상을 한다. 필요한 것들을 적어본다. 사고 싶은 것들도 적어본다. 방학을 앞둔 아이처럼 동글뱅이 안에 계획표도 작성해 본다. 무언가 계획할 때 정말 신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음을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인생사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도화지 위에 작성해 둔 생활계획표를 바라볼 때 그 기분은 정말 신난다. 그렇다 나는 파워 J니까!! 그래서 말인데 월급날은 택없이 멀기만 한데 쓸 생각도 다 해두었다. 2회 차 회사를 다니며 내던 후원금들도 계속 내야 하고, 생활비 일부도 호기롭게 내고,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차도 밥도 살 테다. 신난다. 이 맛에 직장 생활하는 거겠지?!


아침 일찍 일어나 갑천에 나갔다. 미세먼지로 하늘은 어두웠지만 해는 말금하게 떠 올랐다.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발걸음이 가볍다. 출근을 할 때도 바람이 살랑하게 불었다. 페달을 밟는 발걸음이 가볍다. 햇빛이 나를 따라 뽀송하게 비친다. 바람에 손이 살짝 시리지만 괜찮다.

왠지 일기 같은 느낌이라 사족을 한 없이 붙인다. 한 없이 밝은 것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이라 생각해서 행복알레르기가 있다. 허무와 냉소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지만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거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인생 어느 날, 교육 마지막날처럼, 5월 한복판에서 더럽게 춥고 쓸쓸할 것이다. 그때, 이렇게 맑고 벅차오르는 기억이 내 삶의 동력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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